동거인

윤범모

하필이면 태풍 부는 날
이사를 했다
도시의 고층아파트에서 산자락의 마당 있는 집으로
늙은 거처를 옮겼다

울안의 나무들이 온몸 흔들면서 환영인사를 건넸다
하늘에서는 빗방울도 듬뿍 내려주면서
땅과 만나는 빗소리까지 만들어 주었다
아, 비 내리는 소리
세상에는 빗소리도 다 있었구나
집 마당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나는 갑작스럽게 부자가 되었다

태풍 부는 날
나는 현주소를 옮겼다
빗소리가 동거인으로 함께 왔다

 

 

[시평]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주거하는 집이 아파트가 됐다. 시골에까지 아파트가 우뚝 우뚝 서 있어, 그 풍경이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다. 아파트에 사니 사람살이가 많이 편해졌다. 모든 것을 관리실에서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파트에서 사는 가구가 날로 늘어난다.

단독주택이나,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한다는 것이 요즘은 큰 결심이 없으면 어렵다. 시인은 도시의 고층아파트에서 산자락의 마당 있는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마침 그날 태풍이 부는 날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울안의 나무들이 온몸을 흔들면서 환영인사를 건넸고, 하늘에서는 빗방울도 듬뿍 내려주면서 땅과 만나는 빗소리까지 만들어 주었다.

그리곤 비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얼마 만에 들을 수 있는 땅에 부딪는 빗방울 소리인가. 집 마당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갑작스럽게 부자가 된 듯한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그 아파트를 처분하고 시골 전원주택으로 와서 마당의 빗소리나 들으며 부자가 된 듯하다니. 그렇다. 진정 부자가 무엇인지 시인은 알고 있다. 온몸으로 흔드는 울안의 나무들, 마당에 떨어지는 빗방울, 이들이 진정 부자가 아닌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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