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록초(精思錄抄) 1

이재복(1917 ~ 1991)

한밤에 외로이 눈물 지우며 발돋움하고 스스로의 몸을 사루어 무거운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보라. 이는 진실로 생명(生命)의 있음보다 생명(生命)의 연소(燃燒)가 얼마나 더한 영광(榮光)임을 증거(證據)함이니라.

 

[시평]

지금은 많이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우리의 어린 시절만 해도, 도시나 농촌을 망라하고 밤이면 호롱불이나 촛불을 켜고 살았다. 그 시절은 불편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호롱불은 호롱불대로 정취가 있었고, 촛불은 촛불 나름의 정취가 있었다. 호롱불이나 촛불은 마치 온힘을 다하여 발돋움하며, 무거운 어둠을 견디듯 밝히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 촛불은 남들 다 잠이 든 한밤, 외로이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의 몸을 사루며 어둠을 밝히며 서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촛불을 바라보며 시인은 스스로를 자신의 몸을 태워 가는, 그 연소(燃燒)를 찬양한다. 우리가 한 생명으로 태어나, 그 생명이 소중한 것은 다만 살아 있는 생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살아가며 무엇을 위하여 치열하게 자신을 연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리라. 시의 제목인 정사록초(精思錄招), 즉 ‘정미하고 깨끗한 생각들을 담은 글’이라는 그 제목과도 같이, 치열한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가를 이 시는 촛불을 통해 노래하고 있다.

다만 자신의 생명만을 위하여 살아간다면, 그 살아 있음은 단순히 목숨이나 부지하는 그런 삶일 뿐이다. 모두들 잠이 든 한밤중의 촛불마냥, 외로이 자신을 스스로 태워 가며 어둠을 사루는 삶, 그리하여 우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어둠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삶. 그러한 연소(燃燒)의 삶이 얼마나 더한 영광(榮光)임을, 우리의 삶 속에서 증거(證據)함이라고, 촛불을 매재로 시인은 절규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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