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詩] 하현달 - 박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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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달

박덕규(1958 ~  )

 

너는 참 이상한 꽃이야

잠결에 어린 누이가 뜰에 내린 어둠을 쓸고 있다. 발목에 이는 덜 깬 바람이 흐느적거리며 다시 어둠의 일부가 된다. 치마폭에 갇혀서 나의 누이는 밤마다 꽃밭을 가꾸자고 한다. 물안개를 뿜으면 꽃들은 조개처럼 입을 오므린다. 뜰에 가득히 꽃잠을 자다가 나비잠을 자다가 간밤엔 초경으로 가슴 팔딱이던, 오오라

네가
지상에 처음인 그
이 작은 꽃이로구나.

 

[시평]

하현달은 그믐을 향하여 가고 있는 달이다. 그 가냘픈 달은 어둠 속 차츰 몸뚱이를 줄여가다가 머지않아 새벽녘 캄캄한 어둠 속으로 자신의 모두를 지워 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곤 다시 새살이 돋듯, 달의 살이 돋아 오르는, 초승이 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달. 그래서 그런가, 하현달은 마치 쓸쓸히 어두운 뜰을 배회하는 어린 누이와도 같이 애잔하다.

늦은 밤하늘에 떠 있는 여린 하현달을 바라보고 서 있으려면, 모든 기울고 있는 물상(物象)들이 지닌 슬픔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하염없이 서쪽 하늘로, 서쪽 하늘로 끝없이 흘러 흘러만 가야 하는, 그래서 언젠가는 어둠 속 모든 것을 묻어버려야 하는 우리들 모두의 운명을 보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하현달은 지상과 조응하며, 작디작은 꽃으로 피어나고 있는 듯도 하고, 그래서 물안개를 뿜어내는 뜰에서 조개처럼 입을 오므리기도 하고, 그러다가는 설핏 꽃잠이 들기도 하다가, 들었다가는 이내 깨어나곤 하는 나비잠을 자기도 하다가, 초경으로 아, 아 가슴 팔딱이기도 하는 아직 어리디 어린 누이와도 같이, 가냘프고 가냘픈 달. 너 이 지상에 처음인 듯, 밤하늘에 수줍게 피어난 작디작은 꽃이로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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