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권선옥(1952 ~  )

 

추위 속 눈길을 걷다가
문득, 뒤돌아
내 발자국을 본다.
성큼성큼 내디딘 발자국 사이에
촘촘히 찍힌
힘없는 발자국이 섞여 있다.
이리 질팡 저리 갈팡
흐트러진 발자국도 보인다.
저때는 무슨 향기에 홀려
그랬을까,
뒷걸음질 친 발자국은
무엇이 두렵고 무서웠던가.
눈길에 찍힌 발자국을 보다가
벅차게 나의 무게를 견뎌야 했던
발에게
발자국에게
불현듯, 얼굴이 화끈하다.

 

[시평]

올해 유난히 눈이 풍성하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내린 눈으로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해 있다. 사람들은 이 하얀 세상을 밟으며, 그 눈길을 걸어 나간다. 걸어 나가며 하얀 세상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긴다.

문득 걸어온, 그래서 남겨진 발자국을 되돌아본다. 성큼성큼 내디딘 발자국 사이에 촘촘히 찍힌 힘없는 발자국이 섞여 있다. 이리 질팡 저리 갈팡 흐트러진 발자국도 보인다. 발자국은 지나온 나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때로는 당당한 삶이기도 했지만, 어느 때는 갈팡질팡하며 어쩔 줄 모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삶이기도 했었다. 그런가 하면, 무엇이 무서웠는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치던, 그런 삶이기도 했었다.

우리의 삶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발자국. 삶이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띄어 놓는 발. 밤새 내린, 그래서 온통 순백으로 새하얗게 변한 세상, 그 위에 찍힌 내 삶의 흔적인 발자국들을 바라보며, 우리들 지난날의 아련한 회상에 젖는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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