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문숙

인생의 절반을 소비했다

날밤을 새운 날도 많았다

남은 거라곤

뉘 집 냄비받침이나 되어 있을 시집 두세 권이 전부다

그 동안 옆집 동갑내기 여자는

오억 짜리 아파트를 사서 십억을 만들었다

십억 짜리 아파트를 사서 이십억을 만들었다

내가 지금 냄비받침 같은 신세가 된 건

돈 없어도 배부를 것 같은 시에

홀딱 넘어간 탓이다

 

[시평]

시를 쓰는 것이 어떠한 힘이나, 또 현실적인 밥이 되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흔히 시는 왜 쓰느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받을 때가 없지 않아 있다. 요즘과 같이 부(富)라는 현실적 가치가 강조되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특히 우리의 젊은 시절, 시인이 되기 위해서 밤을 낮같이 사는 자식이 안쓰러워 우리의 부모님들이 하시던 말씀이기도 하다. 시가 밥이 되니 집이 되니, 왜 가난한 삶을 택하려 하느냐고 걱정 어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곤 하셨다.

자신이 공들여 쓴, 그리고 마음을 다한 한권의 시집, 사람들에겐 외면되고, 또 읽히지 않고, 그래서 뉘 집 냄비받침이나 되어 있을지 모르는 시집. 이런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밥도 안 되고 뭣도 안 되는 책이 거치적거리며 집안에 돌아다니니, 책의 실용성(?)을 높여 냄비받침으로 쓰는 것과도 같이, 고려 때 큰 학자인 김부식(金富軾)이 왕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하고 임금에게 올린 ‘진삼국사표(進三國史表)’라는 글에서, “비록 이 책이 명산(名山)에 간직하기에는 부족할지라도 장항아리나 막는 종이로 쓰이지 않기를 바라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누구와 같이 십억 짜리 이십억 짜리 아파트도 만들지 못하며, 돈 없어도 배부를 것 같은 시에 홀딱 넘어가 반생을 보낸 시인. 자신이 지금 냄비받침 같은 신세가 된 듯한 현실. 그러나 이렇듯 홀딱 넘어가며 사는 것, 그래서 날밤을 새우며, 인생의 절반을 소비한 생애. 그렇다. 이러한 삶 또한 우리에게는 진정 필요하고 또 가치 있는 삶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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