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4.7 재보선이 딱 두 달 남았다. 특히 차기 대선을 일 년여 앞두고 실시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 커졌다. 그래서 차기 대선의 ‘전초전’이란 말도 나왔다. 그만큼 이번 선거결과가 향후 정세변화의 갈림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임기 5년 차의 레임덕 여부를 놓고 승부수를 띄울 수밖에 없다. 그 연장선에서 정권재창출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특히 서울시장 보선에서 승리한다면 날개를 단 격이 될 것이다. 이낙연 대표의 행보도 한결 가벼워질 수 있다. 결코 간단하게 볼 선거가 아니다.

국민의힘은 사정이 더 복잡하다. 부산시장 보선 승리는 물론이고 서울시장 보선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야 차기 대선을 향한 당 재정비의 동력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보선에서의 ‘의미 있는 성과’는 무엇일까. 최악은 다른 야권 후보에게 단일화 경선에서 밀려나고, 그 단일 후보마저 본선에서 패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국민의힘은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게 된다. 대선을 일 년여 앞두고 서울시장 보선에서 자당 후보조차 내지 못한 제1야당이라면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얘기다. 당장 ‘당 해체론’부터 쏟아질 것이다. 그 후폭풍은 생각보다 훨씬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부산시장 보선에서 승리하고, 서울시장 보선에서 승리는 못했더라도 선전을 했다는 평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정도라면 ‘의미 있는 성과’로 볼 수 있다. 당연히 당 밖의 인사와 단일화 경선에서는 승리해야 한다. 그래야 본선 결과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딱 거기까지만 생각해야 한다. 지더라도 최소한의 표차로 지는 경우다. 차기 대선을 향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의 활력이 살아나고 대선 판세를 흔드는 국민적 관심이 모아질 수 있다. 당연히 인재들도 대거 합류할 것이다. 그만큼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처럼 엄중한 시기에 국민의힘이 보여주고 있는 최근의 행태는 눈과 귀를 의심케 한다. 먼저 산업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북한 원전 문건과 관련해 김종인 위원장은 ‘이적행위’라고 했다. 명색이 제1야당 비상대책위원장이다. 게다가 재보선을 두어 달 앞둔 시점이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사실관계는 확인했어야 했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비밀리에 북한 원전을 추진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반 국민도 다 아는 얘기다. 그럼에도 제1야당 비대위원장이 그 초보적인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색깔론’부터 퍼뜨렸다면 구태도 이런 구태는 없다. 과거 군사정권 앞잡이들이나 했던 짓이다. 광주에서 무릎을 꿇고, 감옥에 있는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죄까지 하면서 중도지대로 나아가려던 김 위원장의 의지는 그걸로 파산이 나버렸다. 앞으로 김 위원장이 무슨 말을 하던 이미 쏘아 올린 ‘이적행위’ 막말에 묻힐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적행위라는 색깔론의 역풍이 두려웠을까. 이번에는 부산에 가서 불쑥 ‘한일 해저터널’ 공약을 해버렸다. 민주당이 주도하고 있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대한 지지까지는 좋았다. 부산시장 보선을 위해서라도 마냥 반대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에 박수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었을까. 그 엄청난 초대형 국책사업을 공약하면서 국민여론은커녕 당내 여론도 모으질 못했다. 게다가 한일 해저터널 얘기는 이미 폐기된 과거의 유산일 뿐이다. 일제 때 제국주의 침략의 통로로 일본 군부가 먼저 검토했던 ‘식민지 정책’의 일환이었다. 그 후 우리 정부에서도 한일 정상회담 등을 통해 언급한 적은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환심을 얻으려는 ‘외교적 수사’에 불과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본 의회에서도 추진단이 만들어졌고, 한국에서는 통일교가 앞장서 행동에 나선 적도 있다. 그럼에도 경제, 안보, 국제관계 등 모든 면에서 ‘불가’로 결론이 났다. 그걸 이번에 김 위원장이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그것도 ‘선거공약’으로 이끌어 낸 것이다. 선거에서 이겨보겠다고 김 위원장이 일본 극우세력의 꿈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만한 행태다. 대한민국과 부산을 일본 대륙진출의 ‘교두보’로 내주겠다는 것, 그리하여 일본 대륙국가의 꿈을 실현시켜 주겠다는 것, 생각할수록 분노를 넘어 우리를 절망케 한다.

이 뿐이 아니다. 이번에는 국민의힘 원내대표실에 들려온 얘기다. 국민의힘이 4일부터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서는 당 소속 의원들에게 원내전략과 관련해 지침을 내렸다. 핵심 내용을 보면 대정부질문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프레임 씌우기’ 전략을 구사하라는 얘기다. 국회 일정을 앞두고 원내대표실에서 소속 의원들에게 원내전략을 전달하고 공조를 당부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그 전략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프레임 전략은 대정부질문의 전략치고는 하책이다. 프레임이 아니라 ‘대안’을 내놓는 것이 상책이다. 대정부질문은 국민을 대표해서 국정현안을 묻고 답하며 국정 전반에 대한 방향을 재점검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프레임 전략을 씌운다는 것은 결국 국정현안을 ‘정쟁’으로 몰고 가라는 얘기다. 게다가 그 프레임에 ‘성폭행’ 이슈가 포함돼 있다면 그건 최악이다.

국민의힘 원내대표실 문건에는 ‘반(反)기업, 반시장경제, 반법치주의, 성폭행’, 이렇게 네 개의 이슈가 적시돼 있다. 구태의연하고 유치한 수준의 정쟁용 프레임 전략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성폭행 문제까지 프레임 전략으로 몰고 가라는 지침은 정말 충격이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성폭행 운운하며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전 국민들에게도 지겹도록 성폭행 시비를 외치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막가는 수준이 아니라면 국회에 이런 전략은 없다. 과연 이런 전략이 ‘약자와의 동행’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김종인 위원장의 국민의힘이 할 일인지, 그러고도 표를 달라고 또 무슨 얘기를 할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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