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11일 당 최고위회의에서 ‘이익공유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정책위에 요청했다. 이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지금은 코로나 양극화 시대다. 고소득층의 소득은 더 늘고 저소득층 소득은 오히려 줄어드는 케이(K)자 모양의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변화에 직면할 것이다. 일상에서부터 세계질서의 변화까지 그 변화의 폭을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한 시대를 좌우했던 패러다임 자체가 변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 많은 변화 중에 이미 가시화되고 있는 것도 많다. 미국의 추락은 뚜렷한 징표로 보인다. 산업생산 시스템은 생태․환경을 빼고는 얘기하기 어렵게 됐다. 공공의료는 생활세계의 필수 아이템으로 더 확고한 지위를 확보할 것이다. 이 밖에도 특별히 강조할 내용이 있다. 부의 양극화가 가파른 속도로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낙연 대표가 말했던 ‘케이(K)자형 양극화’가 바로 그것이다.

어디를 가든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한 동네 길거리의 모습은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비극의 현장’이다.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영세사업자들의 눈물은 어제의 그 눈물이 아니다. 생사의 벼랑 끝에 있다는 ‘절박함’으로 가득 차 있다. 일자리는커녕 구직활동조차 어려운 청년들의 좌절은 ‘미래의 좌절’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다. 지금 손을 쓰지 않는다면 국가적 재앙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와중에서 직장을 잃은 사람들도 넘쳐나고 있다.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다.

반대로 ‘기회’가 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특히 일부 대기업이나 특정 업종 등에서는 오히려 특수를 누리는 경우도 있다. 부의 양극화가 케이(K)자형으로 극대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낙연 대표가 “코로나로 많은 이득을 얻는 계층이나 업종이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기여해 피해가 큰 쪽을 돕는 다양한 방식을 우리 사회도 논의해볼만 하다”고 말하면서 일부 유럽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이익공유제’를 언급한 것이다. 이 대표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집권당 대표로서 지금의 이 어려움을 우리 공동체가 한마음으로 극복해 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것을 꼭 이익공유제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좀 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이익공유제(Profit sharing)’란 대기업 등이 당초 목표한 이익보다 더 많은 이익을 냈을 때 그 초과 이익의 일부를 협력 중소기업 등에 나누어 주는 제도를 말한다. 코로나19가 일상까지 덮친 요즘, 이를 계기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대기업 등이 위기에 처한 기업이나 국민들을 위해 그 이익의 일부를 ‘공유’하자는 얘기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공감만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앞으로 코로나19와 같은 사례들이 또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이익공유’라는 이름으로 마치 무슨 캠페인 하듯이, 또는 돈을 번 쪽의 ‘선한 의지’에 호소라도 하듯이 매번 ‘응급처방’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참에 우리도 ‘캠페인에서 제도’로 가자는 것이다. 마침 세계적으로도 ‘백만장자들의 재산에 세금을 매기자’는 ‘부유세(Property tax)’ 도입 논의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부유세 도입 문제가 이미 선거정책으로 공론화 될 정도였다. 샌더스(B.Sanders)와 워런(E.Warren), 오카시오 코르테즈(A.Ocasio-Cortez) 등이 그 주역이다. 이들의 주장은 백만장자들에 대한 ‘징벌’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가 ‘공생’하자는 것이다. 발전을 꺾자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은 그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이미 부의 양극화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정부의 힘으로도 막기 어렵다. 그 때는 공동체 전체의 공멸을 재촉하는 저항과 투쟁이 곳곳에서 펼쳐질 것이다. 그렇다면 미리 그 대책을 서두르는 것이 정답이다. 정부와 여당이 먼저 나서는 것이 옳다. 부유세 도입은 그 대책으로 매우 적절하다는 얘기다.

부유세 도입은 세제개편을 통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 하나 마나 한 부유세 과세 체계도 안 되지만 과잉도 무리다. 10여 년 전 독일, 덴마크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리 실정에 맞는 적절한 기준을 찾아야 한다. 물론 대기업이나 고소득 사업자들이 반발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도 잘 안다. 국민 다수가 세상에 절망하고 분노하는 곳에서는 고소득도 더 이상은 어려울뿐더러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일상이 죽기 살기의 싸움판이라면 그건 이미 ‘정글’에 다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지금의 코로나 시국은 그 생생한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이익공유’를 화두로 던진 이낙연 대표의 문제의식은 좋다. 그러나 집권당 대표라면, 더욱이 차기 대선의 유력한 인물이라면 좀 더 근본적인 처방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형 부유세’ 도입을 하나의 대안으로 찾았으면 한다. 지금도 엄청난 세금이 대기업과 일부 업종에 투입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부는 그들만의 부가 아니다. 그 뿌리는 모두 국민의 혈세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총 자산과 소득, 그리고 특정 국면에서 거액의 이익을 창출한 모든 곳에 부유세를 적용하고, 그 돈으로 삶의 벼랑 끝에 선 ‘비통한 사람들’을 지켜주는 정책적 변혁을 모색해야 한다. 단순하게 세수를 늘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이번 기회에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길을 우리 한국이 먼저 열어갔으면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소모적이고도 감성적인 담론으로 시간을 보낼 순 없다. 보다 근본적이고 제도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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