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었다. 길고도 험한 길을 건너 드디어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가 21일 공식 출범했다. 2019년 12월 30일 공수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389일만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여야 협의가 안 되는 바람에 패스트트랙까지 태웠던 것을 기억한다면 공수처 출범은 산고의 고통이 너무도 길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중의 핵심 공약이었지만 긴 시간이 흘러 이제 임기 마지막 해인 5년차에 결실을 맺게 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오후에는 공수처 현판식도 열었다. 김 처장은 그 직후 취임식을 연 뒤 곧바로 3년의 임기를 시작했다. 이로써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공수처 출범은 현실이 됐다. 이제 그 간의 진통만큼이나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당장은 첫 수사를 시작하기 전에 공수처 차장 등 간부들과 소속 검사들에 대한 인선 작업이 당면 과제다. 공수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첫 시동을 거는 격이다. 처장을 포함해서 모두 합해봐야 25명의 검사들로 시작된다. 첫 단추부터 잘 꿰어야 하는 부담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첫 출범하는 공수처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매우 높다. 권력층 감시기능이 제대로 활성화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검찰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다는 점도 빠트릴 수 없다. 오죽했으면 ‘검찰당’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고 있을까 싶을 정도다. 윤석열 검찰총장 개인의 정치행보에 대한 지적이 아니다. 조직된 무소불위의 검찰권력, 그 절정의 시간을 우리는 지난 일 년 내내 지켜보았다. ‘검찰공화국’이라는 국민적 냉소를 이대로 묻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공수처 출범이 왜 그토록 고난의 길이었는지 이제 알만한 국민은 다 안다. 기득권 세력의 반발은 상상 그 이상의 것이었다.

이제 공수처가 답해야 한다. 왜 공수처가 필요한지를 말이다. 공수처 수사 대상은 3급 이상의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이다. 거기에는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해서 국회의원은 물론 판검사와 경무관 이상의 경찰관 그리고 장성급 장교 등이다. 대한민국에서 힘을 가진 공직자들 대부분이 포괄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많은 인사들을 소규모의 공수처가 제대로 된 감시나 수사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자칫 무능한 집단으로, 또는 살아있는 권력을 비호하는 집단으로 매도될 여지가 다분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작이 중요하다. 먼저 공수처 수사의 시스템과 그 로드맵을 명료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이것저것 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연장에서 수사의 성과를 국민 앞에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신뢰받는 ‘국민의 공수처’로 각인될 수 있다. 이제 시작이다. 부디 과유불급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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