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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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흥행 코드 가운데 하나가 조폭이라고 한다. 아무리 흥행 코드라고 해도 코로나 19 상황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사실 조폭과 양수 겹장으로 반드시 따라다니는 직업군이 있지만 이를 잘 언급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바로 범죄자를 잡는 경찰, 대부분 형사다. 형사라고 하면 우리는 강력반 형사를 연상한다. 드라마도 물론이고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경찰은 바로 이 강력반 형사들이다.

대개 강력반 형사들을 생각하면 특정 이미지가 떠오른다. 자동 연상체계이기 때문에 스키마(Schema, 圖式)에 가깝다. 힘들고 고되며 실적 부담에 쫓기는데 월급이나 많으면 모를까. 공무원 월급에 박봉이라는 점이 강조되기 일쑤다. 아예 천만 관객 동원에 성공한 영화 ‘극한직업’에서 가리키는 극한직업이 마약계 강력반 형사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이런 직업을 계속하는 것일까. 대개 이런 물음을 던지지는 않는다. 조폭이야 이권이 막대하게 있다면 위험부담을 감수하지만 말이다. 요즘같이 자신이 더 소중한 시대에 단지 국가에 충성하거나 공명심을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아니면 범인과 끝까지 벌이는 승부욕 때문일 수 있다.

연쇄 살인마를 쫓는 경찰처럼 자신의 경쟁 심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과연 이런 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전투의 심리학’에서 데이브 그로스먼·로런 크리스텐슨은 사이코패스일수록 전쟁영웅이 되기 싶다고 밝힌 바가 있다. 살벌한 전투 현장에서 적군 살해를 밥먹듯이 하는 병사가 과연 온전한 멘탈을 가질 수 있겠는가 싶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눈이 희번덕거렸던 장동건(진태 역)처럼. 물론 강력반 형사들이 전투병들은 아니지만 적어도 드라마와 영화를 봐도 상당한 멘탈 관리도 필요해 보인다.

영화 ‘베테랑’에서는 약간 그들의 동기가 나온다. 서도철(황정민)은 중고차 사기범들을 잡아 승진의 기회를 잡는다. 물론 서도철은 승진 자체가 아니라 재벌 3세에 대한 분노에 더 몰입하고 그를 체포하기 위해 최후의 대결도 불사한다. 역시 이런 모습을 보면 정의에 불타오르는 경찰 그 자체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찰들은 공무원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공무원은 승진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과 미래를 보장받으려는 존재로 적응된다. 연금과 노후가 좌우되기 때문에 힘들고 어렵고 때로는 비참한 생활을 감수하는 강력반을 움직이는 동기는 승진을 할 수 있는 큰 건수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일반 교통계 경찰로 발령을 받는 것은 이러한 기회가 덜하거나 없기 때문이다. 즉, 하는 일 자체가 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정인이가 양부모의 학대 끝에 사망한 사실이 CCTV 등을 통해 더 생생히 알려지면서 공분이 전국을 들끓게 했다. 특히 경찰들의 무성의한 대처에 더욱 분노가 폭발했다. 아마 그들은 정인이 학대 사건이 자신들의 승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쯤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정말 아동 범죄에 관해서 승진이 잘된다면 그들이 관심 폭증해 정말 불철주야 아동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분투하는 경찰들이 많아질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이 정권 자체를 붕괴시키는 기폭제가 됐던 것은 아동 인권에 관해 변화한 문화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제도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아동 범죄에 스스로 수사기관과 요원들이 나설 수 있는 내적인 장치와 시스템이 필요하다.

21세기는 희귀해지는 아이의 시대다. 그만큼 귀하고 소중한 만큼 저출산이 심각하며 이에 순응하고 부응해 아동 인권 의식은 높아져만 갔다. 그럼에도 인센티브가 없어서 형사라도 승진을 벗어난 공적 서번트이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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