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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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아티카의 강도인데 기괴한 행태 때문에 아직도 간간이 언급된다. 아테네 교외 언덕에 살면서 프로크루스테스는 행인을 자신의 침대에 뉘고 키가 침대보다 길면 긴 만큼 잘라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춰 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죽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늘리고, 줄이고’와 ‘죽였다’는 말의 연결이 중요하다. 즉,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살인적인 짓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프로크루스테스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비단 신화 속에만 있지 않다. 예컨대, 이러한 행위가 세계적인 영화제인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매우 오랫동안 버젓이 자행돼 왔다. 그간에는 우리와 머나먼 이야기에 불과했지만, 우리의 영화 위상이 달라지면서 이제 더이상 남의 영화가 아니게 됐다.

그 이유는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의 침대 크기 때문이다. 그 침대의 크기는 외국어 50%다. 침대에 누인 영화에 50%의 영어가 없으면 외국어 영화로 규정한다. 이 기준은 너무 자의적인 것이라서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 내용이나 제작 주체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언어 비율로만 규정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영화 ‘기생충’이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분류된 것은 이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준이 얼마나 어이없는지는 이번 영화 ‘미나리’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나게 됐다. 단지 영어가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본상이 아니라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만 한정했기 때문이다.

영화 ‘미나리’는 브레드 피트, 스티븐 연, 리 아이작 정 등 미국 국적인들 제작 영화이고, 또한 미 아칸소주에서 정착한 이주민들의 삶을 다룬 미국 현실의 영화다. 골든글로브는 미국인들이 주최하는 상이지만, 가장 미국적인 것이 영어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아메리칸 드림의 미국이라는 나라는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다인종, 다문화 사람들이 만든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에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하는 이유다. 이는 비단 한국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중국어를 쓰는 중국 이민자, 베트남어를 사용하는 베트남 이민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해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미국 감독 룰루 왕(중국계)이 분노하는 이유이고 베트남계 미국인이자 퓰리처 수상작가인 응우옌이 골든글로브를 비판하는 배경이다. 골든글로브의 낡은 기준은 세계인들을 인종차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미국을 이루고 있는 자국민들에 대한 차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미국 영화계만이 아니라 전 세계 문화예술계의 프로크루스테스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 때문에 미국 문화예술계에서도 비판이 쇄도한 이유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한 봉준호 감독은 자막이라는 1인치의 장벽을 넘으면 더 많은 영화들을 즐길 수 있다고 해서 이목을 크게 끌었다. 이 말을 좀 바꾸면 영어 50%의 장벽이 없으면 더 많은 영화들을 편견 없이 즐길 수 있게 된다. 미 아카데미는 비록 한국어 영화이지만 ‘기생충’에게 외국영화상만이 아니라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까지 주는 데 아낌이 없었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과 본질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운명은 아테나의 영웅 테세우스가 똑같은 방식으로 그에게 가하면서 끝이 난다. 이대로는 골든글로브가 전 세계 문화시민이라는 테세우스에게 똑같이 당할 수 있다. 50% 기준을 중시한다는 이유로 권위는 떨어지며 배척받고 외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미나리’ 이후에는 더욱 가속화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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