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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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한 곳에서 아빠는 다시 병아리 감별하는 일을 시작한다. 병아리의 뒤를 보고 수컷과 암컷을 구분하는 일을 아빠는 10년이 넘게 해오고 있다. 첫 출근날이었기 때문일까. 아빠는 아들을 병아리 감별작업장에 데리고 간다. 잠시 쉬는 틈에 높이 솟은 굴뚝으로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올라간다. 뭔가 태우는 연기다. 아우슈비츠의 연기가 생각날 만하게 뭔가 불안하다. 아들이 그 연기를 보고 아빠에게 물어본다. 무슨 연기냐고. 아빠는 담담하게 말한다. “수컷을 태우는 거야.”

짐짓 놀란 아들은 다시 아빠에게 묻는다. “왜 수컷을 태워.”

아빠는 아들의 눈을 맞추면서 말한다. “수컷은 맛이 없거든. 그리고 알도 낳지 않고.”

짐작은 했지만 진짜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닭은 맛이 있거나 알이라도 낳아야 양계장에서 좋아할 텐데 말이다. 그 말이 끝이 아니었다. 그 다음 말이 귀에 박힌다.

“그러니까, 우리는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영화 ‘미나리’에서 아빠는 오랫동안 병아리 감별사 일을 해왔는데 뭔가 자신 스스로 성취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말대로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아내가 반대해도 새로운 정착지에서 농장을 개간한다. 더구나 아이들에게 훌륭하게 성취하는 아빠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이렇게 영화에서는 수컷의 쓰임과 효용만이 아니라 아빠의 정체성과 역할을 고민하는 모습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남편에 비해 아내는 비록 병아리 감별이라는 일이 어렵기는 하지만 둘이 열심히 하면 빚을 갚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남편은 뭔가 그럴듯한 일을 경영하고 싶은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많은 어려움과 갈등이 있음에도 농장에서 농작물을 수확하고 납품까지 하게 되는데 마침 불이 나서 더욱 어려움에 처한다. 하지만 그 불은 전화위복이 된다.

그 뒤 아빠는 아들과 함께 할머니가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을 뿌려 놓은 곳으로 가는데. 외진 곳, 물가에서 미나리는 정말 왕성하게 번식을 했다. 맛도 좋고 국, 찌개, 무침 등 다양한 요리법에 건강에도 좋은 미나리는 농장의 작물들처럼 비닐을 깔지 않고 거름, 농약을 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 아마도 미국에 이주한 한국인들처럼 정착하는 삶을 상징한다. 이를 통해 비정한 자본주의와 시장주의에서 인간을 도구화 수단화하는 비판을 넘어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세계관을 흔든다.

그렇기에 단지 배우들의 연기상이 아니라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수상해야 할 것이다. 단지 영화 ‘미나리’는 미국의 이주민 영화가 아닌 전 세계적인 저성장 사회의 문화적 가치의 변동을 고민하는 영화다. 남녀를 떠나 그럴듯한 과시의 노동과 직업 인식의 전환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봉준호의 ‘마더’를 벗어나 영화 ‘벌새’의 가족주의 가능성에 더해 경제적 위기의 세계적 대안을 한국의 가족주의에서도 찾고 있다.

최근 알페스 청원과 인공지능 이루다 논란 그리고 딥페이크 청원으로 이어지는 논란은 젠더 갈등과 성대결로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몇 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남녀 간의 갈등 문제는 인터넷 모바일 문화가 확산되면서 격화되고 있다. 그들에겐 근원적으로는 뭔가 효용과 쓰임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식이 흐르고 있다. 어쩌면 21세기에 20세기의 낡은 남녀 성역할에 얽매여있기 때문인데, 이를 영화 ‘미나리’가 이미 초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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