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김소월(1902~1934)
새하얀 흰눈, 가비얍게 밟을 눈,
재 같아서 날릴 듯 꺼질 듯한 눈,
바람엔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계집의 마음. 님의 마음
[시평]
계집의 마음, 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그 마음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마음이다. 한자에 ‘묘(妙)’라는 글자가 있다. 참으로 재미가 있는 글자이다. ‘계집 녀(女)에 적을 소(少)’ 이 한자어와 같이 젊은 여성의 마음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묘령(妙齡)이라고 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본래 ‘묘령’의 뜻은 스무 살 안팎의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전환돼 참으로 ‘묘연한 여성’을 일컫는 말이 돼 버렸다.
아침에 깨어나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밤사이 아무도 모르게 내린 눈이 온 누리를 새하얗게 덮어놓았다. 그 눈을 바라보며, 나를 애태우는 계집의 마음, 님의 마음을 생각한다. 사랑에 빠져 있으므로, 무엇을 보아도 그 님에 대한 생각뿐, 그래서 하얗게 내린 눈을 보면서도 사모하는 님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계집의 마음은, 님의 마음을 저 쌓여 있는 눈에 비하며 시인은 노래를 한다. 계집의 마음은, 님의 마음은 저 들에 쌓여 있는 눈과 같이 새하얀 것일까. 밟으면 가비얍게 밟히는, 그런 눈과 같은 마음일까. 바람이라도 불면 재 같아서 날릴 듯 꺼질 듯한 그런 마음일까. 아니면 바람엔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그런 마음일까.
눈이 내려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을 바라보며, 온통 님에 대한 생각뿐. 그 마음 알 수 없는 님은 과연 어떤 마음을 지닌 계집일까, 그런 생각뿐. 눈을 바라보며, 시인은 그 누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눈이 내린 아침, 그 마음이 더욱 분주해진다. 결코 나쁘지 않은 분주한 상상으로 시인의 눈 내린 아침은 그저 바쁘기만 하다. 어쩌면 사랑이란 ‘마음의 분주함’인지도 모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