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2008년 영화로도 개봉된 바 있는 영국 BBC의 유명한 자연 다큐멘터리 ‘살아있는 지구(Planet Earth)’에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살아 있는 야생의 아름다움이 잘 담겨 있다. 북극에서 툰드라, 온대를 거쳐 적도의 열대우림을 지나 남극에 이르기까지 사계절의 변화와 흔히 보기 어려운 멸종 위기의 야생동물의 서식과 생태를 생동감 넘치게 카메라로 잘 담아냈다.

그런데 거기에 한반도의 풍경이 딱 한 번 나온다. 서해안 천수만과 금강 하구에 날아온 가창오리떼의 군무이다. 30여만 마리나 되는 가창오리떼가 바닷가 하늘을 가득 덮은 채 이리저리 날아오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 그 자체이다. 가창오리의 이러한 군무는 한반도 이외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만 유일하게 관찰할 수 있는 풍경이다.

가창오리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이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60만 마리가 우리나라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25만 마리로 줄어든 상태다. 전문가들은 줄어든 원인을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먹이 부족에서 찾고 있다. 이들은 다른 오리·기러기류와는 달리 낮에 휴식을 취하고 밤에 먹이를 구한다. 예컨대 해질 무렵에 볼 수 있는 가창오리의 군무는 야간 섭식 장소로 이동하기 위한 준비행동인 것이다. 전 세계 집단의 약 95%가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겨울 저녁 하늘을 수놓는 가창오리의 군무(群舞)를 보노라면 옛날부터 궁금했던 의문이 하나 있다. 오리들은 어떻게 서로 부딪치지 않으며 저렇게 무리가 동시에 한꺼번에 날아다닐까. 무리가 하나의 집단의식에 의해 조종되는 것도 아닐 텐데 좌충우돌, 우왕좌왕하지 않고 동시에 서로 같은 방향으로 일사불란하게 서로 부딪치지 않고 이쪽저쪽 자유자재로 비행할 수 있을까?

과학자들도 진작부터 이유를 밝히려 나섰지만 그 원인을 찾지 못했는데 최근에야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 이탈리아 등 유럽 7개국 공동연구팀이 10년 전부터 로마 하늘을 떼 지어 나는 찌르레기를 주목한 덕분이다. 공동연구팀은 고성능 카메라를 이용해 아주 짧은 시간 간격으로 찌르레기 무리를 촬영한 결과 찌르레기들은 바로 옆에서 날고 있는 동료새의 동작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들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찌르레기 떼는 곡예비행 편대처럼 너무 접근하지도, 너무 멀어지지도 않은 채 거리를 유지하며 순차적으로 리더로 추정되는 새의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복제하며 날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나는 연속 동작이라 무리 전체가 동시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떼를 지어 이동하면 이로운 점이 많다. 일단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방어가 유리하다. 무리 자체가 포식자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고 어느 녀석을 목표로 삼아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또 무리 중 약한 새를 보호할 수도 있다. 강한 새가 앞에서 날갯짓을 하면 뒤따르는 약한 새는 힘이 덜 든다. 그렇다고 리더인 대장 하나가 날아가는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군데군데 ‘중간 보스’들이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창오리의 군무도 어쩌면 어디로 갈 것인지 결정될 때까지 갈팡질팡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원래 이맘때면 가창오리의 군무로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 바로 국내 최대 철새도래지인 서산 천수만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올해는 이 가창오리떼가 천수만을 찾지 않고 있다고 한다. 벌써 10년째라고 한다. 해마다 40∼50만 마리씩 몰려왔던 가창오리 떼가 2010년쯤부터 천수만에서 사라진 것이다.

도대체 천수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0여 년 전, 현대가 천수만 간척지를 개인에게 분양한 뒤 소규모 영농으로 바뀌고 농기계 성능이 개선돼 생긴 결과라고 한다. 예전에는 추수가 끝나면 낙곡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소먹이용으로 볏짚까지 싹쓸이해 버린다. 한때는 지자체에서 들녘에 볍씨를 뿌려줬는데 조류독감 때문에 먹이를 주지 않아서 해마다 가창오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40만 마리의 가창오리떼가 월동에 필요한 낙곡만 해도 대략 3천여톤. 이제 천수만은 이런 먹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천수만 밑으로 해남, 강진과 창원 주남저수지에는 여전히 수많은 가창오리들이 찾고 있다. 앞으로는 더욱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겠다. 겨울이 가기 전 늦기 전에 한반도 이남에서만 볼 수 있는 겨울 진객 가창오리떼의 신비의 군무를 꼭 한 번 맛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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