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다사다난했던 2020년이 역사속으로 저물고 2021년 신축년(辛丑年)이 밝았다. 지난 한 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이 많은 고통을 겪었다. 거침없이 우리 삶을 파고든 코로나 바이러스는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이 결합된 환경재난의 복잡한 실체를 여실히 보여줬다. 바이러스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경제 패러다임과 공동체의 문화마저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그야말로 2020년은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해였다. 이제 인류는 현대 문명의 끝에 서 있는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가 생태적으로 재구성돼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 아니라면 팬데믹과 기후위기의 환란을 막을 길이 없다. 금융위기, 기후위기, 보건위기 등 계속되는 위기상황은 글로벌 자본주의를 넘어 포스트 자본주의를 요구한다. 과학기술과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문명은 한계를 맞았으며 이제 새로운 단계가 시작된 것이다.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고, 물질적 번영을 넘어 정신적 풍요의 가치를 전파하는 생태문명이 대안적 미래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제 질적인 변화의 시점에 와 있다.

‘도넛경제학’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는 인간과 환경을 함께 지켜내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두 경계선을 제시한 바 있다. 물·식량·보건·교육·소득 등 사람들의 생존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 충족해야 할 12가지 ‘사회적 기초(social foundation)’ 항목과, 기후변화, 오존층파괴 등 지구 생태계를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지켜야 할 9가지 ‘생태적 한계(ecological ceiling)’ 항목이다. 인류는 이 두 경계선 안쪽 도넛 영역에서만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리고 이 두 경계선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21세기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7가지를 제안했다. 레이어스가 제안하는 첫째 원칙은 경제활동의 목표를 GDP에서 도넛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GDP로 측정되는 경제성장 목표 대신 도넛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기초와 생태적 한계의 범위 안에서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큰 그림을 보라이다. 자기 완료적인 시장이라는 개념 대신 사회와 자연이라는 큰 틀에서 시장의 역할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시장지상주의를 극복하자는 말이다. 셋째는 인간의 본성을 피어나게 하라. 넷째는 경제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라다. 다섯째는 분배를 설계하라다. 불평등 문제의 주요 원인은 제도와 규칙을 잘못 설계한 데서 찾을 수 있으므로 이를 새롭게 정비해 분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섯째는 재생 가능한 경제를 추구하라는 제안이다. 경제성장이 저절로 환경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은 환상임이 드러났기에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중심으로 순환 경제를 구축하는 것이 기후위기를 막는 데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 일곱째는 성장에 대한 맹신을 버리라고 제안한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현실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성장을 하던, 안 하던 모두가 번창(thrive)할 수 있는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레이워스가 주장하는 이 7가지 제언은 한마디로 ‘성장보다 균형을’이라는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경제의 신화가 성장 담론이었다면 이제는 균형과 조화를 통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 경제와 사회의 주요 목표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 존엄성을 보장할 사회적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일정한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지구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도록 발전의 방향과 수준을 조절하는 데 목표를 설정해야만 한다. 레이워스는 한국의 경제 시스템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수요 충족은 약간만 부족하지만, 생태적 한계는 한참 초과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새해가 겨울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까닭은 낡은 것들이 겨울을 건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세모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이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 또한 용기이다. 신축년(辛丑年) 새해는 코로나19에서 자유로운 세상, 마스크 없이 맑은 공기 마음껏 마시며 숨 쉬고 살 수 있는 세상, 뭇 생명이 더불어 함께 공생하며 번영하는 자연생태계, 그 속에서 함께 침 튀겨가며 웃고 떠들고 놀며, 함께 먹고 마시고 손잡고 어깨 걸고 살아가는 세상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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