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한때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열풍이 불던 때가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밀밭,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포도주, 프랑스와 스페인 접경 언덕 사이로 난 이국적인 길은 굳이 종교적 순례를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낭만적인 길이었다. 그리하여 걷는 걸 좋아하는 도보꾼이나 여행객들은 대부분 한 번쯤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꾸기도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제자인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향하는 약 800km에 이르는 도보길이다. 지금은 순례의 의미 보다 그냥 길 걷기를 좋아하는 도보꾼들의 성지가 돼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모여들고, 굳이 신앙과 상관없이 내면적 자기성찰의 길, 구도의 길로 탈바꿈했다. 1993년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이 순례길 못지않은 멋진 둘레길이 생겼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조성되고 있는 중이다. 이른바 코리아둘레길이다. 코리아둘레길은 이미 만들어져 있던 둘레길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외곽(동해, 남해, 서해, 비무장지대 지역) 전체를 코스로 해 사람·자연·문화를 만나는 걷기 여행길이다. 동해안의 해파랑길, 비무장지대(DMZ)의 평화누리길, 남해안의 남파랑길, 서해안의 서해랑길 등을 조성하고 이를 연결해 국제적인 도보 여행 코스 구축을 목표로 한다.

코리아둘레길의 선두 주자는 동해안의 해파랑길이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750km의 장거리 걷기여행길이다. 전체 10개 구간, 50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해파랑길은 부산의 유명한 갈맷길과 울산의 십리대밭길, 경주 신라 천년의 길을 지나고, 전국의 걷기꾼을 부르는 영덕의 블루로드를 만나 동해안 트레일의 백미를 느낄 수 있는 울진 삼척 동해와 낙산 양양 강릉의 바닷길을 지난다.

해파랑길이 해와 바다를 벗삼아 한반도의 동해안을 걷는 길이라면 남파랑길은 한려해상과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해안길이다. ‘남쪽의 쪽빛바다와 함께 걷는 길’이라는 남파랑길은 오륙도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이어지는 1463km 탐방로로, 한려해상 지역 47개, 다도해 지역 43개 총90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남파랑길은 구간별 특성을 담아 ‘남도문화길’과 ‘남도낭만길’ 등 5가지 주제의 길로 구성돼 있는데 특히 장흥에서 강진, 완도, 해남으로 이어진 남도문화길은 남도 유배문화와 다양한 문화유산을 체험할 수 있다.

​해파랑길, 남파랑길에 이어 한반도의 서해안의 바닷길을 잇는 서해랑길은 해남 땅끝마을부터 인천 강화까지 110개 코스, 1804km의 길이다.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많은 섬과 내륙 깊숙이 발달한 만, 광활한 갯벌, 아름다운 일몰을 만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며, 근대문화, 종교, 역사, 인물 등의 인문자원을 많이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대부도해솔길, 태안솔바람길, 부안마실길 등 갖가지 해안길이나 둘레길을 만나기도 한다.

한반도의 허리를 연결한 DMZ 평화누리 길은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을 잇는 횡단 도보 여행길로, 인천 강화군에서 강원 고성군까지 DMZ 인근 접경 지역 501km를 잇는 도보길이다. 해파랑길의 종착점인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시작해 북한 최고 절경 해금강을 엿보며 걷는 고성 구간과 전쟁의 상처가 가득한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 백마고지 철원 구간, 그리고 임진강을 따라 조성된 파주 구간 세 코스로 조성된 ‘DMZ 평화의 길’을 잇고 확장해 동서 횡단의 둘레길을 완성했다.

‘국민이 걷기 편리한 곳’ ‘생태와 풍광이 좋은 곳’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는 기준의 우선순위에 따라 노선이 정해진 코리아둘레길은 도합 총 길이 4500km에 이른다. 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10배이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3배에 이르는 거리로 하루40km씩 4개월을 걸어야 한 바퀴를 완주할 수 있는 거리이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코리아둘레길에 한번 도전해보자. 전 구간 완주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가까운 곳, 걷고 싶은 길부터 걸어보자. 발길 닿는 대로 정처 없이 걷다 보면 거기가 바로 천국임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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