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오랜 기간 인류가 만들어 놓은 삶의 방식과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코로나19의 3차 팬데믹이 현실화되고 있는 이 시점, 질병에 감염되기도 전에 생존이 더 위협받는 이 현실에서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할까? 어떤 삶의 방식을 통해 코로나로부터 그리고 이와 결부된 또 하나의 위기인 기후 재난의 위기로부터 생명의 위기, 생존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인간과 세상을 모두 지키기 위해 최소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그 하나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지켜주는 사회적 기초를 유지하는 선이다. 나머지 하나는 치명적 환경 위기를 막는 생태적 한계의 선이다. 이는 마치 구명 튜브나 도넛의 형태처럼 두 개의 동심원으로 표현될 수 있다. 튜브의 고리 안쪽 선이 사회적 기초의 경계를 이루는 선이라면 튜브의 바깥쪽 고리 선은 생태적 한계의 경계를 이루는 선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두 고리 안의 튜브가 우리가 사는 안전한 세상이다.

그런데 이 튜브의 안쪽 고리 바깥영역으로 나가면 물, 식량, 에너지, 보건, 교육 등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기아, 문맹 같이 심각한 인간성 박탈 사태가 벌어진다. 따라서 안쪽 고리 밖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 공평함, 정치적 발언권, 성 평등 등이 지켜져야 한다. 반면에 튜브의 바깥쪽 고리는 치명적 환경 위기를 막는 생태적 한계를 의미한다. 이 한계선 바깥으로 넘어갈 경우 기후 변화, 화학적 오염, 담수고갈, 질소와 인 축적 등의 위기가 지구 생명 유지 시스템에서 발생한다.

안쪽과 바깥쪽의 이 두 고리 사이에 있는 영역이 바로 균형으로 찾아가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세계이며, 만인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이른바 ‘구명튜브의 세계’이다. 이 이론을 처음으로 제시한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의 정의에 따르자면 바로 ‘도넛 세계(Doughnut World)’이다. 레이워스는 그간의 주류 경제론이 성장론의 망령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경제론을 제시하고 그것을 이른바 ‘도넛 경제학(Doughnut economics)’이라 명명했다.

레이어스 이론의 핵심은 성장의 신화에서 벗어나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있다. 즉 사회적 기초가 무너지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는 동시에 생태적 한계도 벗어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는 시스템, 그러한 메커니즘의 경제학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넛 경제학은 그 내용상 구명튜브 경제론이라 이해하는 게 더 명료하다. 여기서 경제란 칼 폴라니의 주장처럼 산업이나 생산이 주가 되는 기존의 형식적 경제론이 아니라 실체 경제론인 ‘살림살이’ 즉 인간을 먹이고 기르며 살리는 공동체 삶의 경영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경제의 신화는 성장 담론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내총생산(GDP) 성장에 기여하는지 여부가 주요관심사였다. 이 정부에서 외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에서도 이 기준은 시뻘겋게 살아 있다. 그리고 지금껏 우리는 이런 성장 신화를 거부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하지만 성장을 목표로 한 자기 완결적 시장을 전제로 하는 20세기 경제학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21세기 경제학은 번영을 목표로 사회와 자연에 묻어든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 활동의 목표를 성장이 아닌 균형으로 설정해야 한다. 인간 존엄성을 보장할 사회적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일정한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지구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도록 이 발전의 방향과 수준을 조절하는 데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레이워스가 그리는 첫 번째 원인 사회적 기초, 즉 모든 이가 누려야 할 최소 수준의 안녕(wellbeing)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 물, 에너지, 식량, 주거, 보건, 교육, 소득과 일자리, 평화와 정의, 정치적 발언권, 사회적 공평성, 성 평등, 각종 네트워크 등등 인간 존엄성을 보장하는 가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또한 이 첫째 원을 감싸는 더 큰 원인 지구 생태계의 한계, 즉 기후 변화, 대기 오염, 오존층 파괴, 해양 산성화, 화학적 오염, 질소와 인 축적, 담수 고갈, 토지 개간, 생물 다양성 손실 등등 인류가 생존하려면 절대 넘어서는 안 될 기준들 역시 반드시 지켜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와 기후 재난에 따른 환경 위기의 이중고 속에서 우리는 인간과 세상을 모두 지키기 위해 물러날 수 없는 마지노선을 다시금 주목해보고 개인과 사회, 국가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노력을 보다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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