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악수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출처: 뉴시스)
작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오른쪽 위)과 악수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출처: 뉴시스)

러·中·브라질 등 지도자 침묵

트럼프 친분·바이든 관계 악화

대부분 공식 발표 후 축하 예정

[천지일보=이솜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에 대한 전 세계 지도자들의 축하가 쇄도하고 있지만 모두가 이번 대선의 당선인을 인정하고 있지는 않다.

특히 새 대통령에 대한 축하를 보류한 지도자들 중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년간 협조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은 제2의 트럼프들이 있다. 일부 권위주의 지도자들은 침묵을 지키며 그들이 새 정부와 어떤 관계를 가져야할지 치열한 계산에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CNN방송 보도에 따르면 2016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국 대선이 끝난 지 몇 시간 만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지만 현재는 같은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공식 개표 결과가 나온 후 당선인에게 축하하겠다고 9일(현지시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푸틴 대통령을 거듭 치켜세우며 오랜 미국의 정책을 깨고 자신의 선거운동에 러시아가 개입됐다는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외국의 간섭을 ‘적대적 행위’로 취급하겠다고 공언한 바이든 당선인에게는 이와 같은 따뜻한 관계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카린 폰 히펠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 사무총장은 “바이든은 러시아가 해외에서 러시아 시민을 암살하려는 것이든, 시베리아에서 알렉세이 나발니 암살하려 시도를 하든, 러시아가 무엇을 꾸미든 간에 동맹국들과 함께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 역시 바이든이 러시아를 억제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임을 알고 있다”고 CNN에 말했다.

바이든은 지난 10월 말 한 인터뷰에서도 러시아를 미국 국가안보에 대한 ‘주요 위협’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에 당시 페스코프 대변인은 바이든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이런 발언은 러시아에 대한 혐오를 증폭시킨다고 비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였을 당시에도 그는 중국의 원색적 비난을 받았지만 당선된 후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당선 축하를 보냈다. 당시 시 주석은 중미 관계의 진전을 촉구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잠시 의외의 친분을 쌓았지만 양국의 관계는 무역, 기술, 인권, 중국의 팽창주의 비난,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코로나19 대유행의 비난으로 극명한 분열 속에서 악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시 주석은 바이든의 대통령직을 빠르게 환영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일 바이든의 당선을 언제 축하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국제 관례에 따라 행동하겠다”고만 밝히며 즉답을 피했다.

베이징이 왜 망설이는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바이든은 앞서 자신은 트럼프에 비해 중국을 상대할 능력이 있다며 시 주석을 처음으로 포용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해왔다. 중국은 특히 바이든 차기 정부가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거의 하지 않을 것으로 보면서 미국과 타협할 의무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 기간 중국은 자리가 빈 세계의 경찰 역할에 대한 야망을 나타냈으나 미국이 지구촌에서의 전통적 역할에 회귀할 것으로 보이면서 이 또한 차질을 빚게 됐다.

그러나 바이든 당선인이 일관성이 있다는 점은 중국에도 이익이 될 수 있다고 폰 히펠 사무총장은 전했다. 그는 “바이든 당선인은 중국에 강경한 입장을 보일 것이며 동맹국들과 협력해 중국 정책을 함께 펼치겠지만 바이든은 기후변화든 북한이든 상호 이익이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중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대선 후보시절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광범위하고 제약을 받지 않은 권력을 포함한 개헌 국민투표를 논란 속에서 가결시킨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전화해 축하를 건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미군을 갑자기 철수한 것을 포함해 반(反)IS 동맹국인 시리아 쿠르드족이 터키의 진격에 노출되는 등 트럼프 행정부 기간 에르도안 대통령은 대담한 행동을 보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후 러시아 무기를 구입해 나토 동맹의 분노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이 아직 당선인으로 인정하지 않은 바이든의 대(對)터키 정책은 전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작년 뉴욕타임스(NYT) ‘더위클리’ 특집 편에서 터키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터키의) 야당 지도부와 쿠르드족을 지원하는 등 매우 다른 접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포퓰리즘 정치의 공동체이자 흔히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의 패배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그의 자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녀들과 같이 정치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들은 트럼프의 재선 도전에 대해 희망을 갖고 있었다. 워싱턴 여행에서 ‘트럼프 2020’ 모자를 쓴 아들 에두아르도 보우소나루 하원의원은 지난주 트위터에 바이든의 표와 미국 선거의 청렴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같이 여성 혐오, 인종차별,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일삼아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대중을 분열시켜왔다. 또한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코로나19 국가임에도 이 대유행을 지속으로 경시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패배로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외교 동맹국을 잃고 인권과 환경에 초점을 맞춘 새 미국 대통령과 마주하게 됐다.

폰 히펠은 “이것이 다른 포퓰리즘 지도자들의 종말을 예고할 수 있을까”라며 “포퓰리즘 지도자들 상당수는 대유행을 부정하고 있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처럼 자국 국민들에게 실제로 관심이 없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바이든을 당선자로 거론하지 않은 채 미국 선거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아꼈다. 그는 지난 7일 TV연설에서 “우리는 가볍게 행동하고 싶지 않다. 국민의 자기 결정권과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기를 원한다”면서 “법적 문제가 모두 해결될 때가지 기다릴 것”이라고 밝혔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적 괴롭힘과 인종차별적 발언에도 지난 몇 년간 트럼프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추종 세력을 통해 정치 브랜드를 구축해 온 두 명의 포퓰리스트들은 지난 7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을 맺기도 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바이든을 축하하는 것을 꺼리는 것은 어쩌면 이 우정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CNN은 다른 나라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을 회피하는 외교정책 전통의 지속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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