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문제이다. 차별금지는 헌법 제11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법 앞의 평등과 성별·종교·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금지 등 평등권과 평등원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도 차별금지법, 그것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차별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헌법에 평등권이 기본권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1776년 미국 버지니아 권리장전부터이다. 이 시대에는 헌법이란 용어가 없었기 때문에 권리장전이 헌법이었다. 역사적으로 헌법이란 용어는 1787년 미국 연방헌법에서 최초로 사용됐다. 버지니아 권리장전 이후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에서 자유·평등·박애는 핵심이었고, 평등은 프랑스 헌법 제1조에 채택됐다. 종교적 평등과 신분 철폐를 통한 신분적 평등으로부터 시작된 평등은 현대에 오면서 모든 국가의 헌법에 인권의 상징으로서 명문화돼 있다.

헌법은 제11조에 평등권과 평등원칙을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규정에서 평등을 구체화하고 있다. 예를 들면 헌법 제31조 제1항은 능력에 따른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 제36조 제1항에서는 혼인과 가족생활에 있어서 양성의 평등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은 기본권 조항들에서 모든 국민은 이란 표현으로 국민은 누구든지 평등하게 각 기본권을 보장받는다는 것을 규정해 평등을 원칙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헌법은 형식적 평등을 넘어서 실질적 평등을 위해 제34조에서 여성과 노인 및 청소년, 그리고 신체장애자 등에 대해 국가가 복지와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국가의 의무로 하고 있다. 이렇게 헌법은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규정해 차별화하고 있는데 합리적 근거가 있으면 차별을 허용함으로써 실질적 평등을 추구하겠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헌법이 평등권 조항뿐만 아니라 여러 조항에서 평등을 직·간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평등이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등권은 국가에 어떤 행위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거나 무엇을 해 줄 것을 요구하는 기본권이 아니다. 평등권은 다양한 사실관계의 비교를 통하여 비로소 그 내용이 결정되는 상대적 기본권이다. 평등권은 국가작용이 평등원칙에 합치되는 한 보장된다. 즉 국가가 국민에 대해 차별하지 않는 한 평등권은 보장된다.

자유와 평등은 인간에게는 분리될 수 없는 인권의 전제이다. 특히 평등은 그 자체보다는 자유를 구체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장되는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공동체를 구성하고 삶을 영위하기 때문에 무제한의 자유와 평등은 보장되지 않는다. 평등은 보편성과 상대성을 갖는다. 평등은 그 자체만이 아니라 평등의 대상인 인간이 스스로 평등의식을 형성하고 이를 구체화할 수 있어야만 실현될 수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는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고착됐던 차별의식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였지만 여전히 인간 사회에는 차별이 존재한다. 법률이 포괄적 차별금지를 규정한다고 평등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평등이 자유를 제한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평등이 아니라 자유를 억압하는 불평등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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