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용유담은 지리산 북사면 자락을 끼고 도는 엄천강의 상류 마천면과 휴천면의 경계인 송정마을 초입에 있는 계곡 호수다. 지리산의 아름다운 계곡들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이곳에서 합류돼 장방형의 평평한 호수를 이루고 있다.

용유담은 신선이 노닐던 계곡답게 옛부터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화강암으로 된 기암괴석이 첩첩이 쌓인 험준한 봉우리는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청아한 물빛, 거울 같은 물에 비친 산 그림자, 푸른 못의 반석에 펼쳐진 모래가 잘 어우러져 지리산의 숨은 비경, 한 폭의 진경 산수화를 보여준다. 길 언덕 위에 구룡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나귀바위와 장기판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와 관련해 용유담에는 아홉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과 마적도사와 당나귀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이야기인즉슨, 옛날 옛적에 마적도사가 살았는데 종이에 쇠도장을 찍어서 나귀에게 부쳐 보내면 그 나귀가 어디로인지 가서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을 등에 싣고 왔다. 그 나귀가 용유담 가에 와서 크게 울면 마적도사가 쇠막대기로 다리를 놓아 나귀가 용유담을 건너오곤 했다 한다. 하루는 마적도사가 나귀를 보내 놓고 장기를 두고 있었다. 그때 마침 용유담에서 용 아홉 마리가 놀다가 싸움을 시작했다. 용이 싸우는 소리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장기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나귀가 와서 울었는데도 마적도사는 듣지 못하고 장기만 두고 있었다. 나귀는 힘을 다해 울부짖었으나 아무 반응이 없자 그대로 지쳐 죽었다고 한다. 나귀가 죽어서 바위가 됐는데 그 바위가 곧 나귀바위다. 마적도사는 자신의 실수로 나귀가 죽자 화를 못 참고 장기판을 부수어 버렸다. 그 장기판 부서진 조각이라는 돌들이 지금도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또한 용유담 맑은 물에는 등에 무늬가 있는 물고기가 살고 있었는데, 그 무늬가 마치 스님의 가사와 같다고 해서 ‘가사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이 지리산 계곡에서만 사는 물고기이다. 또 이 지방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지리산 서북쪽에 달궁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 곁에 저연이라는 못이 있었다고 한다. 이 못에서 그 가사어가 태어나서 가을이 되면 물을 따라 내려와서 용유담에 이르러 놀다가 봄이 되면 달궁으로 돌아가는 까닭에 용유담 아래에서는 이 고기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용유담은 근래에 와서는 강변에 울창하던 숲이 적어지고 옛날보단 풍치가 덜하나 여전히 지리산의 도사나 강호의 은자, 자연인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영험한 기운으로 인해 지리산 최고의 무속신앙 굿터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지금은 윗마을 송전마을이 생태마을로 개발돼 각종 펜션과 전원주택이 들어서고 있으며 일박이일 강호동이 휘젓고 간 지리산 둘레길 4구간인 용유교가 있어 이를 지나는 둘레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풍경을 감상하며 땀을 식히는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는 일찍이 지리산에 은거하며 붓글씨와 가야금으로 세월을 낚던 지인의 초막이 인근에 있어서 반려견 태풍이랑 자주 들르곤 했다. 같이 놀던 태풍이는 작년에 16년의 생을 마감하고 용유담에 잠들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한때 이곳 용유담에 지리산 댐 건설을 추진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리산댐 건설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건 1990년대 중반, 갈등의 시작은 낙동강 물 대체 식수원 문제였다. 3급수 수준의 낙동강 물을 대체할 수돗물 취수원을 댐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에서 발생했다. 당시 경남도가 발표한 계획을 보면, 지리산댐은 높이 141m 길이 896m로 총저수량이 1억7000만t에 이른다. 계획대로 댐을 건설하면, 높이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높은 평화의 댐(125m)보다 16m 더 높고, 길이는 진주 남강댐(1126m)에 이어 두 번째로 긴 댐이 된다. 댐이 건설되면 경남 함양군 휴천면·마천면 일대 4.2㎢가 물에 잠기게 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지리산생명연대 등 지역주민들과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투쟁으로 2018년 9월 환경부가 ‘지속가능한 물관리를 위한 첫걸음’ 로드맵을 통해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국가 주도 대규모 댐 건설을 중단할 방침을 밝히면서 지리산댐 계획은 백지화가 됐다. 하지만 지리산의 개발을 노리는 토건업자들과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인들은 언제든지 이를 다시 개발할 구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댐과 케이블카 건설 추진 계획에 이어 지금도 지리산 자락 20km에 산악열차와 케이블카, 모노레일을 건설하는 이른바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가 해당 지자체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이자 뭇 생명들이 살아 숨 쉬는 생명평화의 생태 축이다. 우리가 끝까지 지키고 가꿔야 할 마지막 보루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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