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지난 1일 짤막한 부음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V리그 여자프로배구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에서 뛰었던 고유민(25)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일 경기 광주경찰서는 전날 오후 9시 40분경 광주시 오포읍의 자택에서 고유민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외부인의 침입을 비롯한 범죄 혐의점이 없는 점으로 미뤄 고유민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봤다.

그로부터 20여일이 지나면서 그가 죽은 원인을 둘러싸고 유가족들과 현대건설 구단의 공방이 이어졌다. 유가족은 지난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언론에서는 고유민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원인이 악성 댓글이라고 한다. 악성 댓글에 시달린 것은 맞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며 “현대건설 코칭스태프의 따돌림, 선수의 앞길을 막은 구단의 사기극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2013년 프로배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현대건설에 입단한 고유민은 수비력을 인정받아 백업 레프트로 활약했으며, 지난해 4월 처음 FA 자격을 얻어 잔류계약에 성공했다. 하지만 올 2월 29일 팀 숙소를 이탈했으며 5월 임의탈퇴로 처리돼 배구를 그만두게 됐다.

유가족의 법정 대리인인 박지훈 변호사는 “현대건설이 계약해지를 통해 3월부터 4개월분의 급료를 아낄 수 있었다. 고유민이 고액 연봉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팀으로 가기 위한 것을 막기 위한 악의적인 조치로 볼 수 있다”며 “구단들이 선수를 내보낼 때 쓰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현대건설의 사기에 고유민이 크게 실망하며 절망했다”고 주장했다. 임의탈퇴 처리된 선수는 원소속 구단이 이를 해지하지 않으면 한국배구리그에서 선수로 뛸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인의 유가족들은 현대건설 배구단 박동욱 구단주와 사건 관계인들을 검찰에 고소해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현대건설 측은 곧 반박문을 내고 “선수와 구단이 합의해 계약 해지를 했으며, 임의탈퇴 처리 후 선수의 은퇴 의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대건설 코칭스태프의 따돌림에 대해선 체육시민단체 ‘사람과 운동’이 고인의 휴대전화와 태블릿 PC 등에서 찾은 자료 등을 제시했다. 이 자료에서 고인은 현대건설 코칭스태프의 의도적인 따돌림과 훈련 배제, 비인격적 대우로 괴로워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또 자해 시도를 한 동료 선수를 감싼 행동으로 코칭스태프의 눈 밖에 난 사건이 고인의 죽음에 결정적이었다고 밝혔다.

양측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한 상황에서 진실이 무엇인지를 가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지난 7월 여자철인 3종경기 선수 고 최숙현 사건처럼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 젊은 선수들이 아까운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숙현 선수의 경우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당초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국민 청원이 이어지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소속팀인 경주시청에서 선배와 팀닥터의 폭행과 폭언, 협박과 갑질 등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행해지며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고유민 사건도 최숙현 사건처럼 원인을 철저히 파헤치면 죽음의 내막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한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는 데는 실제로 삶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극심한 고통이 있었다고 심리학자들은 분석한다. 특히 삶의 버팀목이 무너지는 순간 불현듯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는 것이다. 운동선수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그만두거나 운동을 하면서 인권침해를 당할 때 가장 힘든 순간을 맞는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최숙현 사건에 이어 고유민 사건도 죽음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