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잔칫날 잘 먹을 것을 기대했지만 정작 음식물이 신통치 않다는 의미로 쓰인다. 요즘 국내 체육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이 말을 실감나게 해 준다. 올해 대한체육회 창립 100주년을 맞았지만 잇달아 대형 악재가 돌출하면서 쑥대밭이 된 모양새다.

상반기 철인3종 고 최숙현 선수 사건이 터지며 구조적인 체육계 폭력과 비리로 호된 여론의 질타를 받은 데 이어 하반기에는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오랜 숙제인 분리문제가 다시 표면화돼 체육계가 혼란에 휩싸일 조짐이다. 최숙현 선수 사건으로 관련 경주시청 팀 감독과 선수들이 구속되는 등 엄중한 처벌을 받았다. 감독 기관인 대한체육회도 경고 등의 징계처분을 받았다.

더 문제인 것은 해묵은 KOC 분리 문제가 다시 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체부는 감독기관으로 이번에 KOC를 분리하려고 한다. 마침 내년 초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가 걸려있어 차제에 KOC를 떼놓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문체부가 대한체육회로부터 KOC를 분리하려는 이유는 대한체육회에 대한 영향력과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게 대한체육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KOC가 대한체육회로부터 떨어져 나갈 경우 그동안 국가올림픽위원회로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내세워 국내 스포츠계의 대표단체로서 공공적 위치를 확보했던 대한체육회는 한낱 문체부의 ‘일방적인’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표선수 훈련비 등 4천억원에 이르는 대부분의 예산을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대한체육회가 그나마 문체부의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것은 IOC의 정치와 스포츠 분리원칙이라는 대명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체부도 IOC의 원칙으로 인해 드러나게 분리작업을 추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전과는 좀 다른 모습이다. 문체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KOC 분리를 밀어붙일 분위기이다. 일부 국회의원들까지 적극 가세해 KOC 분리의 명분을 쌓아가고 있다. 대한체육회도 종전 방침을 고수하며 그냥 물러서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양쪽은 마치 정면 충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당초 대한체육회는 1920년 7월 출범한 조선체육회(대한체육회 전신)의 지난 1세기를 되돌아보고 자축하는 ‘대한민국 체육 100년 기념식’을 지난 7월 13일 정세균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개최할 계획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의식, 행사 장소인 3천명 수용의 서울올림픽 공원 올림픽홀에 6백명만을 초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6월 26일 폭력 때문에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이 행사를 무기 연기했다. 설상가상으로 KOC 분리 문제가 터지자 대한체육회는 대형폭탄을 얻어맞은 듯 큰 충격에 빠졌다. 대한체육회 대의원들은 지난달 KOC 분리에 반대한다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2016년 통합체육회가 출범한 지 4년밖에 안 된 시점에서 KOC를 분리하는 것은 체육회의 이원화를 초래해 또다시 대립과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체육회가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간섭과 통제를 벗어나려면 스스로 재정 자립도를 높여 미국과 일본의 체육단체처럼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지금처럼 예산은 정부로부터 받고 몸만 홀로 서려고 한다면 정부의 압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꿈의 실현 가능성이 요원해 당분간 정부와 KOC 분리를 놓고 힘겨루기를 할 수밖에 없는 신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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