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란

늙은 여자의 등을 민다
등에 마른 별자리들이 흩어져 있다.
오그라지는 등
조금씩 소멸해 가는 여자의 그림자를 독해한다
등에 업고 있는 것들은 세밀화처럼 정직하다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
또는 타로 카드
별점 치듯 긴 세월을 더듬다
일그러진 시간 저편으로 따라간다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그늘에 밟힌 손
한때 뜨거웠던 꽃의 향기를 맡는다

 

[시평]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을 목욕탕에 모시고 와서는 등을 밀어주는 풍경, 예전에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특히나 좀 촌스러운 타일로 장식이 된 동네 목욕탕에서는 흔히 있었던 모습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딸이 또는 며느리가 어머니를 모시고 목욕을 온 것이리라.

우리의 어린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리어, 혹은 어머니 손에 이끌리어 동네 목욕탕을 갔다. 뜨거운 탕 안에 들어가기가 조금은 겁이 나는데, 어머니나 아버지는 엄한 얼굴을 하고 우리를 탕 안으로 밀어 넣으셨다. 들어가서는 몸의 오래된 때가 불어날 때까지, 우리는 아무리 뜨거워도 참아가면서 뜨거운 물 속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부모님들이 어린 우리의 손목을 잡고 목욕탕에 가듯이, 성장한 우리 또한 이제 연세가 많이 되신 부모님들을 모시고 목욕탕에 간다. 그리고는 부모님들께서 우리를 뜨거운 탕 속에 들어가게 하고는 이내 북북 온몸의 때를 밀어주시듯, 우리들 이제는 연세가 든 부모님의 마른 등을 밀어드린다.

등을 밀면서 새삼 부모님이 늙으셨다는 것을 더욱 실감한다. 오그라든 등에 돋아 있는 마른버짐들은 어쩌면 부모님의 고단한 생애를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등을 밀어드리면서, 마른버짐을 보며, 별점을 치듯 부모님의 지난한 긴 세월을 더듬는다. 그리고는 한 생애를 살아오면서 겪었던 그 많은 일그러진 시간의 저편으로 따라간다. 일그러진 시간을 따라 등을 밀다가, 한때 뜨거웠던 꽃의 향기, 아, 아 뜨거운 어머니, 아버지의 내음을 맡는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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