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詩] 가난의 이름은 - 문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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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이름은

문현미

 명동 백작이라 불리던 시인의 꿈은 한국의 장 콕도로 불리는 것 그런 꿈을 꾸던 그가 31살에 요절을 했다 명동 ‘경상도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시상이 떠올라 쓴 「세월이 가면」은 노래가 되어 빈 가슴을 채우고 있다 외상 술값도 시인답게 꽃이 피면 갚겠다고 한 그의 가난 살아남아 있는 자들의 눈동자에 차디찬 슬픔으로 젖는다 떠나기 전 친구에게 마지막 남긴 말은 “돈만 있으면 쌀부터 사두라”였다 착한 가난이 흑염소처럼 울게 만드는 저녁 어스름

 

[시평]

1950년대는 우리나라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못살던 나라 중의 하나였다. 일제로부터 35년 간 식민지의 삶을 살았고, 광복이 된 지 몇 년 되지 않아 6.25 전쟁이 터졌다. 그러므로 일제의 수탈과 착취, 이후 전쟁의 폐허는 우리의 삶을 더욱 황폐하게 했다.

이 시절, 명동(明洞)에는 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모여들었다. 이 명동에 문총(文總)이며 신문사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곳에는 막걸리집, 찻집 등 모두 편하게 돈 없는 문화예술인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으로 유명한 박인환(朴寅煥, 1926~1956) 시인도 명동을 드나들던 예술인의 한 사람이었다. 그를 명동의 백작이라고 불렀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일정한 직업도 없이, 매일 같이 드나들던 명동. 그곳은 가난한 시인, 예술인들이 모이던 곳이었다.

‘경상도집’이라는 허름한 막걸리집이 있었다고 한다. 1956년 어느 이른 봄, 봄 같지 않게 날씨도 쌀쌀하고 꽃도 아직 피지 않았던 이른 봄날, 예의 박인환은 경상도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가까운 친구인 언론인이며 극작가인 이진섭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다, 문득 종이와 팬을 꺼낸 박인환이 무언가 끄적여 썼다고 한다. 이 시가 ‘세월이 가면’이다.

시를 받아 든 이진섭이 시가 좋다며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곡을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세월이 가면’은 노래가 된 것이다. 이때 마침 테너인 임만섭이 지나다 들르게 됐고, 임만섭이 이 노래를 시창(始唱)을 하게 되고, 이 노래는 이내 세 사람의 합창이 돼 경상도집 허름한 창밖으로 울려 퍼지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 합창소리에 지나던 사람들이 하나 둘 경상도집으로 들어오게 되고, ‘세월이 가면’은 온 밤 내 명동을 떠돌던 노래가 됐다고 한다.

꽃이 피면 갚겠다는 술값, 갚지도 못한 채 박인환은 문득 저 세상으로 간다. 가난해 하루의 조석거리를 생각해야 했던 1950년대의 사람들, 그러나 문화와 예술을 우선으로 생각했던 1950년대의 문화예술인들. 이제는 그러한 명동도, 또 그러한 진실도 찾아보기가 어려워진 오늘만이 우리의 앞에 놓여 있을 뿐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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