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우체통

서경온(1956 ~  )

 

망우리 공원묘지
입구에 서 있는 근심우체통

근심거리를 적어 넣으면
먹어치운다고 써 있었다.

평생을 나의 
근심우체통이 되어 주셨던
어머니

꽃바람 속에 그리움 도져
울컥 목이 메는
봄날이었다.

 

[시평]

망우리 공원묘지 근처에 가면 ‘근심우체통’이 있다. ‘망우(忘憂)’라는 지명은 ‘근심을 잊었다’는 뜻과 함께,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이나 무학대사의 한양도읍 이야기가 얽힌, 그 유래를 담고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근대 이후 망우리는 서울 인근의 공동묘지로 유명했다. 그래서 근대를 살아간 역사적 인물이 많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망우리는 단순한 공동묘지가 아니라, 한국근대사를 살아간 분들의 정신을 만날 수 있는 문화 공간이기도 하다. 이 근대문화의 공간에 근심우체통이 생긴 것이다.

근심우체통에는 근심거리를 적어 넣으면, 근심을 먹어치운다고 써 있다. 근심거리 걱정거리를 써서 넣어두면, 주민자치회에서 정기적으로 수거를 해 근심을 나누겠다고 한다. 근심을 서로 나누고 해결하려고 함께 노력을 한다면, 그 근심의 정도가 적어지겠지. 근대문화 공간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슨 어려운 일이나 근심거리가 생기면, 무엇보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사랑의 품으로 모든 것을 품어주며 우리의 어려움을 풀어주려고 하신다. 어쩌면 근심우체통은 나의 어머니인지도 모른다. 평생을 나의 근심거리를 받아먹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 계신 어머니, 이곳 망우리 근대문화 공원 산책길에서 만나는구나. 꽃바람 속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도져, 울컥하고 목이 메는 봄날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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