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속으로] ‘철인(鐵人)’을 쓰러뜨린 체육계 폭력, 과연 벗어날 길은 없는가
[스포츠 속으로] ‘철인(鐵人)’을 쓰러뜨린 체육계 폭력, 과연 벗어날 길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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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영어로 트라이애슬론(Triathlon), 3종 경기는 하루 동안 혼자서 수영, 사이클, 마라톤 세 종목을 연이어 뛰는 경기이다. 이 경기를 완주한 이들을 ‘철인(鐵人)’이라고 말하는 것은 쇠같이 힘이나 몸이 강하다는 의미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철인’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엽전으로 된 돈을 만드는 사람이거나 철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를 뜻했다. 지금과 같이 무적의 ‘불사신(不死身)’과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일본의 강압적 지배의 영향으로 일본식 한자어로 말 쓰임새가 바뀌게 되면서였다.

대한체육회 산하에서 유일하게 ‘철인’ 자리를 붙이는 경기단체인 대한철인3종협회가 벌집 쑤셔놓은 듯 어수선한 모습이다. 최근 여자 철인이 외압적인 폭력을 당했다고 호소하며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고 최숙현 사건이다. 그는 지속적인 폭력의 힘에 희생돼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소중한 삶을 포기했다.

고 최숙현 사건은 아무리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강한 철인일지라도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되면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아픈 교훈으로 일깨워줬다. 철인 3종 경기는 그동안 인권의 사각지대였다. 최숙현의 소속팀인 경주시청은 훈련을 명목으로 합숙소를 운영, 감독과 고참 선수, 팀 닥터 등이 최를 포함해 소속 선수들에게 체벌과 정신적 폭력을 행사했다. 경주시청 김규봉 감독은 2017년 최숙현의 부모가 지켜보는 앞에서도 뺨을 때리고, 최숙현의 어머니에게도 ‘딸의 뺨을 때리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일부 고참 선수와 팀 닥터도 후배들을 다그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괴롭힘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 등이 폭력 가해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성적 지상주의’를 내세워 폭력을 정당화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주시청 등 대부분의 지자체팀 선수들은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성적이 나쁘면 잘린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감독 등이 ‘선수들을 때려서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체육계에서 그동안 크고 작은 폭력 사고가 많았다. 대한체육회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는 폭력, 성폭력 등의 가혹 행위 등의 신고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쇼트트랙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심석희 선수폭행사건이 터지며 스포츠 폭력에 대한 감시와 처벌이 대폭 강화되기도 했다.

스포츠 폭력은 잠잠해지다가도 때만 되면 다시 도지곤 했다. 그만큼 스포츠 현장에서 폭력이 일상화, 생활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숙현 사건만 해도 조기에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다. 최숙현은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 대한철인3종협회, 경주시청,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지검 경주지청 등 5개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단체가 서로 정보 공유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건 처리가 더뎌지면서 최숙현의 우울증이 점차 깊어졌다는 게 가족들의 얘기였다.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체육 당국은 이번 사건을 뒤늦게 파악하고 가해자를 일벌백계하고 체육계에 만연한 폭력과 인권 침해를 추방시키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체육 당국의 결연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체육인들은 폭력 등이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좁은 대학입시를 뚫기 위한 치열한 학생들의 성적 경쟁,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실업팀의 생존 경쟁 등이 계속되는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철인조차도 생을 포기했으니까 말이다. 과연 스포츠 폭력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많은 이들이 진심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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