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오래 전 모 전자회사 TV 광고는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TV 모니터가 넓어진 것을 소비자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한 아이디어 광고물을 내보냈다. 골키퍼 앞에서 상대의 프리킥에 대비해 스크림을 짜고 있는 수비수들 옆으로 볼이 침투할 수 있는 빈 공간을 설명하는 광고였다. ‘보이지 않는 곳을 보이게 해줍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기발한 광고 기획 때문이었다. 축구장에 있는 관중들은 볼 수 없지만 TV 광고는 좀 더 넓은 화면을 통해 숨은 공간을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TV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부분을 드러내 보이며 스포츠의 즐거움과 묘미를 한층 높여주었다. 슬로비디오와 리플레이 장면 등은 순간 동작으로 놓치고 지나칠 수 있는 선수들의 동작 등을 TV가 전자 기술을 통해 살려낸 것이다. TV는 기술적인 우위를 한껏 과시하며 스포츠의 상업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2천년대 들어 TV가 심판을 대행하는 경기의 감시자로 나서며 TV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다. 축구에서는 TV 비디오 판독을 통해 골 상황을 분석하기도 하며, 야구에서는 스트라이크와 볼에 대한 판정을 비디오를 보고 결정하기도 한다. 배구서는 터치와 아웃 시비에 대한 판정을 TV 중계 화면이나 설치된 비디오 화면을 보고 내리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TV 화면에 의해 판정이 번복되는 경우는 이제 흔한 장면이 됐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TV라는 기계의 눈을 결코 속일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지난 주 까다로운 규칙을 지키며 예절을 존중하는 스포츠인 골프에서 TV 화면이 잡아낸 규칙 위반으로 뒤늦게 프로대회 우승자에게 2벌타를 부과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가장 권위있는 미 PGA 대회 중 하나인 메모리얼 토너먼트 4라운드에서였다. 룰 담당 슬러거 화이트 부회장은 이 대회 우승자 스페인의 욘 람이 16번 홀 칩샷을 하기 전에 웨지 헤드로 볼 뒤쪽 잔디를 여러 번 누르는 과정에서 볼이 움직였다고 확인했다. 이 장면은 리플레이된 TV 화면에 또렷하게 잡혔다. 2벌타가 부과되면서 최종적으로 제출한 스코어카드에 16번 홀 성적은 버디가 아닌 보기로 처리됐다. 람이 스코어카드를 제출하면서 이 사실이 확인됐는데, 다행히도 그가 5타 앞서 있는 상황이었던만큼 2벌타를 받았어도 3타차가 앞서 있어 우승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만약 람이 1~2타차로 앞서 있다가 경기가 끝난 뒤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면 큰 혼선이 빚어질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TV 화면이 없었다면 아무도 볼이 움직이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2벌타를 받은 람은 “공이 움직인 줄 몰랐다”면서 “그랬다면 벌타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뭔가 개운치 않은 뒷 맛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 람과 같이 세계 정상급 선수가 자신의 실수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하는 사실 때문이다. TV가 적발을 하지 못했다면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아주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TV 중계가 마치 만능 해결사로 등장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골프의 경우 선수들이 스스로 룰에 따라 운동을 하며 심판관이 되는 대표적인 종목이다. 골프의 가치가 빛이 나는 것은 선수 스스로가 룰을 지켜나가는 신사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룰을 잘 지킬 때 올바른 결과가 나온다. TV 화면을 통해서까지 검증이 된다면 골프의 공정성이 크게 위협 받을 수밖에 없다. TV 중계가 안 되는 곳에서 일어나는 규칙 위반은 자신이 아니면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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