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오래된 지인을 만났다. 그녀와 함께 일하던 시절, 같이 일하던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전에는 왜 그렇게 별것도 아닌 것으로 기분이 상하기도 하고 관계가 깨지는 일까지 있었는지 모르겠다면서 웃었다.

언제든 어디서든 멀리 볼 줄 아는 사람은 유리하다.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리더의 경우에 멀리 내다보려는 노력은 더욱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충청남도 예산군에 가면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는 열녀문이 있다. 1976년 1월 8일에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됐다.

화순옹주는 영조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순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화순옹주는 13세에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 월성위 김한신과 결혼했다. 남편 김한신은 행실이 바르고 겸손했을 뿐 아니라 부마가 된 후에도 비단옷을 걸치지 않아서, 사람들이 왕의 사위인지도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부부금슬도 좋아서 사람들은 그 부부를 ‘어진부마와 착한옹주’라고 부르며 그들을 칭송했다고 전해진다. 그러한 행복도 잠시 39세에 이르렀을 때 남편의 죽음을 맞게 된다. 

남편을 잃은 슬픔에 곡기를 끊은 옹주를 찾은 영조는 딸에게 식사를 할 것을 거듭 권하지만 입에 넣었던 음식까지 뱉어내며 곡기를 끊은 지 14일 만에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슬픔에 젖은 영조를 위로하기 위해 신하들은 그녀의 죽음을 기려 열녀문을 내리자고 했지만 영조는 남편에게는 열녀일 수 있으나 부모에게는 불효라며 거부했다. 신하들이 더욱 강력하게 이야기를 하자 영조는 그렇게 할 경우 남편이 죽는 경우 따라 죽을 것을 강요당하거나 스스로 남편을 따라 죽는 여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 염려된다면서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실제로 25년 후 정조가 자신의 할머니 화순옹주에게 열녀문을 내리자 남편을 따라 죽는 사례가 늘어났다고 한다. 딸의 공을 칭찬하고 기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백성의 경우까지 두루 헤아리는 영조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처럼 큰 고민이야 아니겠지만 사실 우리들은 늘 이와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당장은 좋은데 길게 놓고 볼 때는 안 좋을 수도 있는, 나한테는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안 좋을 수도 있는 일들 말이다. 

누군가는 ‘나는 리더가 아니니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리더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좀 더 넓게 생각하고 결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건너는 신호가 아닌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건넌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 때에 혼자라면 건넜을까? 물론 건넜을 수도 있겠지만 안 건넜을 가능성이 훨씬 많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회적 동물이므로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된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지구의 반대편에서 폭풍을 만들 수도 있다는 이론처럼 우리의 작은 행동들이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당장의 이익을 따지거나 감정을 표출하기보다는 먼 미래를 생각해본다면 좀 더 나은 행동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런 자신을 돌아볼 때 좀 더 행복해지거나 편안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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