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21대 총선, 유권자도 괴롭다
[정치평론] 21대 총선, 유권자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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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제21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2일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선거 열기는 예년과 같지 않다. 아니 길거리는 오히려 썰렁해 보인다. 어쩌다 만난 후보자들이 인사를 건네지만 지나가는 유권자들은 시선조차 돌리지 않는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쪽이 민망할 정도다. 게다가 뉴스를 봐도 온통 코로나19 사태 소식이다. 특히 미국의 코로나19 사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안한 얼굴과 다급한 미국의 상황이 뉴스에 비칠 때는 사태의 엄중함에 다시 놀란다. 과거 인류를 공포에 떨게 했던 ‘글로벌 재앙’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이번 제21대 총선은 바로 이러한 세계적인 재앙 속에 치러지는 특이한 상황이다. 지금은 유럽을 넘어 미국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지만 한국도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엄중한 상황이다. 언제 어디서든 집단발병이 일어날 수 있을뿐더러 수도권을 중심으로 환자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두 달 이상을 버티다 보니 국민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쳐있다. 일상이 흔들리고 생활이 고달프다 보니 경제도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선거는 치러야 한다. 아니 이번 제21대 총선은 역대 어느 총선보다 중요하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최악의 국회로 기록된 20대 국회 이후의 ‘대한민국의 길’을 단적으로 보여 줄 ‘국민적 좌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박근혜 탄핵 이후 국회가 먼저 대한민국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 냈어야 했다. 그것이 국회의 핵심 역할이며 민주정치의 저력이다. 그러나 20대 국회 후반기는 새로운 비전은커녕 죽기 살기로 할퀴고 싸우면서 ‘막장 정치’의 추태만 보여줬을 뿐이다. 길거리 집회가 난무하고 폭언과 막말은 다반사였다. 심지어 국회 안에서도 폭력사태는 예외가 아니었다.

국회는 이미 시대에 드리운 어둠을 걷어낼 힘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서로 할퀴고 싸우면서 ‘동업자’가 돼 버린 지 오래다. 그들이 지금껏 누려온 ‘정치 기득권’은 그렇게 만들어졌으며 또 재생산됐다. 물론 지금도 진행형이다. 민주당과 통합당, ‘도긴개긴’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다시 그들에게 맡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결국 민주정치의 주인인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총선이 더 없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장 정치의 후유증은 여전히 강력하다. 죽어야 할 것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 정작 새로운 것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두 거대 정당의 칼춤 활극에 모든 시선을 뺏긴지 오래다. 살아남기 위해 온갖 몸부림으로 한국정치를 농단했던 통합당의 언행은 논외로 하겠다. 더 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제 입법을 이끌었던 민주당이 막판에 그 연동형 비례제를 뭉개버리는 꼼수를 쓸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데 그 ‘꼼수 정당’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압도적이다. 이 뿐이 아니다. 그 꼼수 정당과 각을 세운 ‘제2의 꼼수 정당’도 지금 인기리에 선거정국을 질주하고 있다. 이쯤 되면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지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 또한 정치현실이다. 그렇다면 합리가 아니라 ‘광기’로 보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능하다. 이성이 배제한 광기, 그것이 현실이라면 모두가 미쳐있는 셈이다.

그 연장선에서 꼼수 정당 만들기, 깜도 안 되는 비례후보 만들기, 비례 번호 바꿔치기, 현역 의원 꿔주기, 막판에 교섭단체 만들어 국고보조금 타내기 등등 몰염치와 파렴치의 적나라한 막장 정치가 드디어 이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짓을 한들 유권자들을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차피 한국정치는 그들의 손바닥 위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이처럼 저급한 ‘막장 쇼’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다만 이런 사태를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심정이 괴로울 뿐이다.

그렇다고 두 거대 정당 외에 다른 대안이 마땅한 것도 아니다. 제3지대정치를 표방한 정당들은 이미 존재감조차 없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제3지대정치의 종갓집인 민생당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추락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픈 대목이다. 그리고 연동형 비례제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들고 달려와 의석 몇 석 챙기려는 국민의당의 아우성은 초라하다 못해 차라리 서글프다. 진보정당인들 예외가 아니다. 급속하게 추락하고 있는 정의당의 최근 모습은 한국 진보세력 전체의 비극이다.

그럼에도 제21대 총선 결과도 승자와 패자로 나눌 것이다. 그리고 그 승자들의 목소리가 다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과연 어느 쪽이 승리해야 한국의 희망, 우리들의 미래를 말 할 수 있는 것일까. 동서남북 어디에도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 정말 이것은 국민적 불행이다. 지금 총선을 앞둔 다수 유권자들의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 총선만큼은 ‘선거 보이콧’을 하고 싶다는 주변 지인들의 농담 아닌 농담은 그래서 더 아프게 들린다.

정치비평에서 자주 인용되는 몇 개의 경구가 있다. 그 중에 투표함이 열리기 전까지는 승패를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번 제21대 총선은 더 안갯속이다. 이제 선거운동이 본격화 됐지만 벌써 승패를 가늠해 보는 언론들의 행보가 바쁘다. 그러나 허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정국이 몇 번은 더 출렁거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경구로는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딱 그 나라의 국민 수준과 같이 간다는 말이다. 열 번을 들어도 부인하기 어려운 금언이다. 아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막장급의 제21대 총선이 지금 막 시작됐다. 과연 유권자들이 어떻게 결론을 낼지 참으로 궁금한 대목이다. 그리고 그 선택 앞에선 유권자들도 참으로 괴로운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그 또한 운명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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