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역대 이런 선거는 없었다
[정치평론] 역대 이런 선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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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21대 총선 후보등록이 26일부터 시작되면서 선거정국이 본격화 됐다. 역대 어느 선거이든 그 시대적 요구와 무게가 가벼웠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오는 21대 총선은 과거 그 어느 선거보다 역사적 과제와 정치적 무게가 크고도 무거워 보인다. 한국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한국 민주주의가 과연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를 전면적으로 재조명 할 수 있는 거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1919년 3.1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년을 보내고 새로운 100년을 맞는 첫 해에 치르지는 선거다. 앞으로의 100년, 그 향방을 가를 수 있는 시금석이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는 헌정사상 초유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처음 맞는 총선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의 정당정치를 비롯한 한국의 정치지형이 어떻게 재편될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분수령이다. 그리고 ‘피플파워’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도 강하다. 시기적으로도 문 대통령 임기 절반을 넘긴 시점이다. 그만큼 정치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총선정국이 이제 본격화 되고 있는 셈이다.

선거제도에서도 큰 의미가 하나 더 추가돼야 한다. 헌정사상 최초로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돼 처음으로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비록 비례대표 의석수가 47석에 불과하고 그 마저도 30석에만 적용될뿐더러 정당득표율 반영율도 50%만 적용되는 반쪽짜리에 불과하지만 새로운 선거제도의 첫 걸음을 뗐다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를 통해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해체되고 비록 작지만 다양한 정치세력이 국회에 들어가 정책과 가치를 놓고 ‘경쟁과 협력’을 자유롭게 이룰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진영대결’의 무한 정쟁을 끊어내고 ‘정치복원’을 이룰 수 있는 원년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컸다.

그러나 21대 총선을 맞는 최근의 정국은 민주화 이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온갖 편법과 반칙, 꼼수와 음모 심지어 오만과 몰염치가 판을 치는 최악의 정국이 펼쳐지고 있다. 두 거대 양당이 의석수 한 석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펼치는 ‘꼼수와 반칙’의 대결을 보노라면 말 그대로 ‘막장’이다. 얼마나 국민을 우습게 봤으면 이처럼 저급한 대결을 펼치고 있는지 부끄럽다 못해 분노마저 치민다.

공천 명단이 발표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뒤바뀌기 일쑤다. 벌써 퇴출됐어야 할 사람들이 막판에 다시 귀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까운 인재들이 소리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비례대표 명단은 마치 누군가가 떡을 주무르듯 변화무쌍하다. 한번 의결된 비례대표 순번이 그토록 손쉽게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도무지 부끄러워하는 법이 없다. 몰염치의 극치에 다름 아니다.

어렵게 도입된 반쪽짜리 연동형 비례제는 마치 시궁창에서 뒹굴고 있는 모습이다. 본래의 취지를 완전히 벗어나서 거대 양당의 ‘위성’처럼 그 주변을 맴돌고 있다. 아니 노골적으로 ‘자매 정당’ 운운하면서 연동형 비례제의 도입 취지를 맘껏 조롱하며 왜곡하고 있다. 우리 헌정사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도 이런 사례가 또 있는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향해 꼼수니 반칙이니 하면서 비난하기에 바쁘다. 결국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연동형 비례제마저 무참하게 짓밟고 있는 셈이다. 정치 기득권 세력의 파워 치고는 너무도 막강하고 무섭다.

이 뿐이 아니다.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되자 그동안 이를 지켜보던 특정 세력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신당을 창당해서 숟가락을 들고 뛰어 들었다. 혹여 진입조항인 3% 이상의 득표율을 얻으면 한 두석 정도는 얻을 수 있으니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헌법이 보장한 정치활동의 자유, 정당설립의 자유로만 이해할 대목이 아니다. 시류에 편승하고 특정인의 인기에 연연하는 ‘선거용 비례 정당’의 난립은 오히려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렵게 만들뿐더러 선거정치의 판을 더 혼탁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고단한 정치역정을 감내하고 있는 다른 군소정당들의 위상마저 한 순간에 무력화 시킬 수도 있다. 아무리 명성 있는 ‘떳다방’이라 하더라도 부동산 시장의 교란범이요, 서민과 무주택자들을 울리는 ‘공공의 적’에 다름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로 보는 것이 옳다.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극을 향해 치닫고 있으며, 꼼수와 반칙으로 범벅된 위성정당들은 건강한 한국 민주정치의 생태계마저 교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으로 포장을 하든 한국정치의 적폐인 ‘승자독식 체제’를 더 단단하게 지켜주는 ‘보루’에 다름 아니라는 뜻이다. 철저하게 정치 기득권세력의 편에서 선 그들이 어찌 국민의 눈물을 알 수 있겠는가. 오랜 세월을 힘들게 견뎌냈던 군소정당들의 피울음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더 큰 걱정이 있다. 이미 팬데믹이 돼버린 ‘코로나19사태’가 위기의 한국정치를 더 큰 위기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번 총선을 보이콧 하고 싶다는 몇 지인들의 농담에는 가시가 돋쳐 있다. 정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말 그대로의 ‘막장급 총선’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그럼에도 국민을 믿어야 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바탕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선 21대 총선, 과연 국민은 얼마나 관심을 보일 것이며 또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결국 믿을 곳은 현명한 유권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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