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정치 괴물들의 이전투구
[정치평론] 정치 괴물들의 이전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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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범여권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18일 공식 출범했다. 통합당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에 맞대응하기 위해 만든 민주당발 위성정당인 셈이다. 모습은 ‘연합’이라는 형식을 갖추었지만 여기에 참여하는 다른 군소정당들은 그 이름도 생소하다. 대체로 역사도 짧고 의석도 없다. 그러니 국민의 관심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굳이 ‘연합’을 강조하면서 이런 군소정당들을 끌어 들인 것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함일 것이다.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이 대목에서 민주당은 ‘참 나쁜 정치’를 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제를 선거제도의 개혁방안으로 제시했던 민주당의 역사는 꽤 길다. 과거 김대중 정부 때는 ‘독일식 정당명부제’라는 이름으로 공론화되기도 했다. 민주당은 그 후 기회 있을 때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도입해서 선거제도의 발전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정의당과 진보적 시민단체도 한목소리를 냈으며 정치학자들도 다수가 환영했다. 민의의 전당에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현실적 방안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당 간 경쟁을 촉발시켜 정당정치가 활성화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정치복원’의 제도적 모멘텀으로 평가된 이유라 하겠다.

드디어 민주당이 집권당이 된 문재인 정부에서 바로 그 연동형 비례제가 빛을 보게 됐다. ‘피플파워’로 일궈낸 촛불정권의 의지가 핵심 동력이 됐다.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연동형 비례제를 여야협상 테이블로 올려놓은 민생당 손학규 전 대표는 일등 공신이다. 협상을 주도한 정의당은 그 견인차였다. 단 한 석도 손해 볼 수 없다며 폭력도 불사했던 통합당의 저항을 뚫고 패스트트랙을 거쳐 제도화 된 것이 지난해 12월 말이었다.

그러나 패스트트랙을 거치면서 연동형 비례제는 상처투성이 모습으로 비틀어지고 모양새 사나운 ‘괴물’이 돼 버렸다. 비례의석을 기존대로 47석으로 제한했을 뿐더러 그 중에 30석만 캡을 씌워 연동형을 적용했다. 물론 적용 비율도 절반으로 깎아서 50%만 반영키로 했다. 말이 연동형 비례제지 실상은 기형에 다름 아니었다. 그럼에도 선거제도 개혁의 일보 전진을 바라는 마음에서 그나마 다행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괴물은 통합당과 민주당을 거치면서 더 악랄한 괴물로 변질되고 말았다. 통합당은 일치감치 연동형 비례제를 무력화시키는 위성정당 창당을 공언했으며 그대로 미래한국당이 창당됐다. 하지만 거기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또 순번을 놓고 벌이는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의 설전은 말 그대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전형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다. 겉으로는 개혁인 듯 포장하더니 급기야 통합당보다 더 저급한 ‘더불어시민당’이라는 위성정당을 창당시켰다. 당초의 말을 바꿨다는 점에서, 자신들이 주도한 선거제도 개혁을 스스로 짓밟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여론의 역풍을 우려해 몇몇 군소정당을 끌어들여 물타기를 했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더 나쁘고 저급하다. 이전의 기형같은 괴물이 민주당 손에 의해 더 악랄한 괴물로 변질된 셈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개싸움 비례당’이라고 혹평한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의석수를 놓고 두 거대정당의 괴물 간 혈투가 본격화 될 전망이다. 결국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의 싸움으로 압축되고 있다는 뜻이다. 마치 진흙탕처럼 변질된 연동형 비례대표제 위에서 두 괴물들의 싸움판은 말 그대로의 ‘이전투구’에 다름 아니다.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도 구분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정의나 명분도 없고 원칙과 상식도 잊은 지 오래다. 오직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의 막장급 개싸움 판이다. 그 속에서 과연 민생당과 정의당이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몇 석이나 건질 수 있을지 참으로 험난한 진흙탕 길이다.

이렇게 되면 최종적인 선택은 역시 유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그래서 ‘나쁜 정치’와 맞닥뜨린 국민은 언제나 피곤하고 괴로운 법이다. 가까이도, 멀리도 할 수 없는 정치적 운명 앞에 어떻게든 결단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당투표에서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 가운데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 줄지, 아니면 진영싸움 그 프레임대로 양쪽 골고루 지지표를 나눠줄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도 아니라면 두 거대정당이 벌이는 이전투구의 진흙탕을 갈아엎어서 두 비례정당 모두를 퇴출시키는 방법도 있다. 이것은 연동형 비례제의 정착을 갈망하는 민생당과 정의당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최근 펼쳐지고 있는 두 비례정당의 행태는 우리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러므로 두 정당의 이전투구 결말이 어떻게 나올지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다. 어느 한 쪽이 이길 수도, 또는 양쪽 모두가 승자가 되거나 패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연동형 비례제를 놓고 벌이는 두 정당의 왜곡과 추태는 외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국민의 눈과 귀가 한쪽으로 쏠린 사이 정치권 그것도 집권당과 제1야당이 벌이고 있는 막장의 정치행태는 비극적이다 못해 참담하다.

정치는 딱 그 나라 국민의 수준과 같이 간다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한국에서 그것도 2020년에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정치판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 황당하기조차 하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도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바보’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민주당과 통합당의 저급한 꼼수가 통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이전투구의 흙탕물을 국민도 함께 뒤집어쓸지, 아니면 진흙탕 개싸움을 완전히 끝장낼지, 오는 21대 총선의 결과가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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