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속에서 치러진 21대 총선이 무난히 끝났다. 사전투표 때부터 기록을 갱신한 높은 투표율은 본투표까지 이어져서 1992년 14대 총선(71.9%) 이후 가장 높았다. 무려 28년만의 대기록이다. 총선 결과도 예상대로 ‘민주당 압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21대 총선의 의미를 강조하기엔 부족하다. 21대 총선에 더 풍부한 의미를 부여해야 할 세계적인 정치담론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사태가 중국을 넘어 한국을 강타할 때만 해도 21대 총선을 연기해야 한다는 정치권 안팎의 지적이 많았다. 여론도 이러다가 정말 총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설사 예정대로 총선을 실시하더라도 투표율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정세균 총리는 신중했다. 총선 연기는 어렵다며 대신 종교집회 등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면서 코로나19사태의 확산을 막는 데 주력했다.

더 놀라운 일은 그 후부터 본격화 됐다. 정부의 총력 대응과 의료진들의 헌신적 진료와 봉사, 그리고 국민의 자발적 동참 등 세 박자가 함께하면서 한국은 코로나19사태를 극복하는 세계적인 모범 국가로 급부상했다. 비록 코로나 이슈가 선거정국의 블랙홀이 되면서 예년과 같은 선거운동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큰 차질 없이 총선은 잘 마무리 됐다. 게다가 총선 연기론이나 투표율 저하 등의 섣부른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투표율도 충격적일만큼 높았다. 그동안 우리가 간과했던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이라 하겠다.

우리가 스스로를 저평가하던 사이 한국의 21대 총선을 지켜보던 세계 주요 나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영국 BBC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무엇이 가능한지 한국이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특별한 선거’라는 의미도 덧붙였다. 영국 텔레그래프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47개국이 코로나19사태로 선거를 연기했지만 이들 국가는 한국의 실험적 투표 방식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영국은 확진자 9만 3천여명, 사망자 1만 2천여명을 기록했다. 사망자로는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수치다. 세계적 위기 속에서도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여기까지 온 것이다.

영국보다 더 심각한 이탈리아에서는 일간 라스탐파가 “현 사태에서 선거를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한국이 하나의 모델 국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코로나19사태에서 마스크를 쓰고 서로 거리를 두면서 세정제로 손도 씻고 체온도 측정하면서 비닐장갑까지 갖춰서 투표에 임하는 한국의 총선 모습, 이탈리아는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부러운 듯 분석했다. 이런 시선은 프랑스와 스페인, 미국 등에서도 비슷했다.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은 한국 총선이 곧 대선을 치를 미국에 적용할 점이 많다면서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외신을 언급한 것은 그들의 지적이 고맙거나 옳아서만은 아니다. 우리가 투표에 임하면서 스스로 느꼈던 것들을 외신이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보도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정국에서 치러낸 이번 21대 총선은 그 과정과 투표율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바로 그 점을 세계의 주요 선진국 언론들이 짚어 낸 것이다.

그러나 이번 21대 총선 과정을 통해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팬데믹과 한국 총선을 연결시키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높은 수준을 언급하는 것은 동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끌어 올리는 수준이라면 형식 못지않게 그 내용도 좋아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아쉬운 대목도 몇 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선거정치의 영역이 너무 협소했다. 아무리 코로나 정국이라고 하더라도 선거정치의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이른바 ‘묻지마 선거’나 ‘까막눈 선거’가 되고 말았다는 일각의 비판을 수용해야 한다. 선거운동 기간에도 하루 종일 반복되는 코로나 블랙홀은 선거정치를 스스로 밀어내버렸다. 정치신인들이나 군소 야당이 선거정치의 동력을 살리기 어려웠을 뿐더러 정책선거 기회도 거의 소진돼 버렸다. 민주정치의 본류와는 거리가 멀다.

기상천외의 방식으로 비틀어지면서 변질된 연동형 비례제의 가치는 무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그러나 거대 양당이 그 주범이었음에도 그들이 비례의석 대부분을 가져갔다. 상식 밖의 결과다. 꼼수와 반칙이 통하면서 거대 양당의 기득권이 그대로 지켜질 수 있는 선거제도라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는 통했다. 이것을 좋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선진국 언론이 이런 행태를 어떻게 보도할 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끝으로 하나 더 짚어본다면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지역주의 정치’가 다시 맹위를 떨쳤다는 점이다. 그 연장선에서 ‘제3지대정치’는 사실상 소멸되고 영남과 호남을 양대 축으로 하는 지역주의 정당체제로 복귀한 셈이다. 특히 통합당이 사실상 영남권의 ‘지역정당’ 수준으로 몰락해버린 것은 특기할 만한 결과다. 겉으로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말하지만 그 내용이 기껏 ‘지역주의 정치의 귀환’으로 압축된다면 이는 정치발전이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는 대목이다. 물론 20대 국회 후반기에서 극렬하게 대치했던 양극단의 패거리 정치, 즉 진영 간 대결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한국 민주주의는 형식보다 내용에서 너무도 빈곤하다. 21대 총선은 그 실체를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이제 새로운 국회가 열릴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내용, 즉 콘텐츠를 기대할 수 있을까. 솔직히 여전히 불안하고 미덥지 못하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