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21대 총선이 이제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예년 같으면 지금쯤은 선거구도가 모두 짜이고 조금씩 선거열기가 살아날 시점인데 최근의 상황은 전혀 아니다. 거의 모든 언론이 ‘코로나19 사태’에 집중하는 바람에 총선을 비롯한 정치권 소식은 가뭄에 콩 나듯 하다. 마침 세계보건기구(WHO)도 뒤늦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이젠 세계적 공포감마저 확산되는 느낌이다. 주식시장을 비롯한 세계경제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에 따라 당분간 코로나19사태는 국내외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선거는 치러야 한다. 아니 어쩌면 21대 총선은 역대 어느 총선보다 중요하다. ‘피플파워’로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 낸 이후 딱 3년 만에 직면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박근혜 탄핵 이후 지난 3년간 국정농단세력은 제대로 청산되었는지, 아니면 그 잔류파들이 여전히 발호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새롭게 권력을 장악한 집권세력은 지난 3년간 무엇을 했는지, 혹여 그들마저 민심을 져버리고 국정농단 대열에 나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 양쪽에서 눈치만 살피던 정치권 안팎의 ‘기회주의자들’이 총선을 앞두고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점검해 볼 타이밍이다. 저급한 언행으로 제 살길 찾아 나서는 정상배들의 행태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에 다름 아니다. 시정잡배보다 못한 처신은 표가 아니라 ‘돌’을 맞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이런 점에서 ‘인적 쇄신’의 기회가 21대 총선을 통해 활짝 열리고 있기 때문에 이번 총선은 더 없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국정치의 새로운 물결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20대국회보다 더 저급한 절망의 늪으로 빠질 것인가의 갈림길에 있다는 뜻이다.

예단은 금물이다. 아직은 그 무엇도 명료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메시지’가 나왔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통합당은 크게 반겼다. 여전히 ‘박근혜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도 아니다. 가는 곳마다 한숨소리와 고통소리, 이젠 비명소리까지 가득하다. 과연 이대로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불안하다. 게다가 이 틈을 타서 정치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저급한 정치꾼들’의 행태는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지경이다.

그러나 21대 총선마저 이런 식으로 치를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코로나19사태에 발목이 잡힌 총선정국이 ‘그 밥에 그 나물’을 만들어 내는 꼴이라면 이는 더 큰 비극이다. 그렇다고 지금은 딱히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기도 어렵다. 물론 시간도 없다. 결국 이번 총선에서도 ‘똑똑한 국민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총선에 앞서 21대 국회의 판을 새롭게 짤 수 있는 지혜를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하겠다. 이대로는 21대 국회마저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면 일찌감치 그 해법을 찾아보자는 뜻이다. 총선을 앞두고 있으니 ‘선거공약’으로도 좋을 것이다.

그 하나의 대안으로 ‘한국형 연립정부’를 기획하자는 것이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연립정부 형식의 국정운영이기 때문에 비교적 낯설다. 그래서 ‘한국형’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남은 임기 동안 21대 국회를 통해 ‘연립정부’를 구성해서 정부와 국회를 다수세력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막연하게 권력만 나눠 갖는 것이 아니다. 거기엔 명확한 목표가 있으며 또 그만큼의 책임도 있을 것이다.

첫째, 정치를 복원하자는 것이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21대 국회 전반기는 보나마마 최악의 싸움판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탄핵’을 들고 나올 통합당, 그 깃발을 들고 길거리로 쏟아질 수구세력들 그리고 이에 편승한 일부 언론의 선동까지 더해서 정국은 최악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가 다시 정쟁으로 뒤범벅되면서 ‘전쟁터’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뻔히 예견하면서도 지금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연립정부를 구성해서 정치를 복원시키려는 노력이 시급한 가장 큰 이유라 하겠다.

둘째, 21대 국회에서는 개헌문제가 다시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권력구조를 비롯한 ‘87년 체제’의 한계를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30여년 전의 낡은 외투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립정부는 개헌을 이뤄내는 정치적 동력이 될 것이다. 마침 여야 국회의원 148명이 서명한 개헌안이 지난 6일 발의됐다. ‘개헌 국민발안제’를 도입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지만 제7공화국을 향한 개헌 논의가 시급하다는 국민적 바람이 묻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연립정부의 경험은 새로운 권력구조를 모색하는 데도 시금석이 될 것이다.

셋째, 대통령 임기 후반기마다 반복되는 레임덕 논란을 잠재우고 실질적인 ‘책임정치’를 통해 국정운영의 새로운 좌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일여다야(여소야대) 구조는 본질적으로 ‘무한정쟁’을 잉태하고 또 촉발시키기 마련이다.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으면 정권교체의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반이 안 되는 집권당은 야권에 포위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진영싸움’에 기댈 것이다. 말 그대로의 ‘막장정치’ 재판이다. 21대 국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은 그래서 더 우울하다. 이런 점에서도 연립정부는 다수세력에 의한 책임정치를 강화하고 정당 간 경쟁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마침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비례연합정당’ 얘기가 구체화되고 있다. 잘만 하면 21대 국회에서 연립정부로 가는 하나의 디딤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현실은 언제나 이상보다 더 잔인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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