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 주말 집에서 ‘방콕’ 신세를 면치 못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모임과 외출자제를 당부하는 당국의 권고에 따라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가정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마땅히 시간을 보내기가 어려웠다. 봄 기운이 만연해지면서 한창 시즌이 열리려고 할 때, 모든 스포츠 대회가 멈춰섰기 때문에 집에 있으면서도 볼만한 스포츠가 없었다. 겨우 본다는 게 TV와 SNS 등을 통해 지난 스포츠 중계였다. 1라운드를 치르고 갑자기 중단된 미프로골프(PGA) 플레이어스챔피언십 대신 바로 앞서서 벌어진 피닉스 오픈을 케이블 TV에서 봤다.

스포츠 대회가 전격 중단된 것은 잠재적 피해자를 줄이려는 사전 예방적 차원이다.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해야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회범죄학 개념으로 교도소에 죄수를 가둬 사회적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격리하는 것을 의미했다. 사회를 잠재적 범죄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비제약적 감염 통제 조치의 집합적 의미로 활용된다. 사회적 거리를 두는 목적은 감염요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감염되지 않은 사람 사이의 접촉 확률을 감소시켜 질병의 전염, 질병의 발생,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망률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의 경우,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확산을 차단하는 대표적인 조치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의 단점은 외로움, 생산성 감소, 인간 상호작용의 단절 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블루(우울감)’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난 1월 이후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스트레스, 우울증 등 심리적 불안을 호소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종업원들이 적극적으로 생산에 참여하지를 않음으로써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고, 심지어는 같은 직장과 조직에서 조차도 서로 대면하기를 꺼릴 정도가 됐다.

스포츠는 사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반대편에서 존재감을 갖는다. 스포츠를 매개로 많은 사람들은 개인을 넘어서 서로를 이해하며 사회적 정체성을 같이 공감한다. 좋아하는 선수, 좋아하는 팀의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개인 간, 사회적 연대감을 갖는다. 국가 간의 대항전을 통해선 민족의식, 국가의식을 공유한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우리 국민 전체가 붉은 악마로 로 거리응원을 했던 것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스포츠 대회가 전면 휴업 상태에 들어간 지 2주일도 되지 않았음에도 스포츠에 대한 심한 갈증을 느낀다. 대부분 삶이 외롭고, 재미없고, 무미건조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럴 때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회적 도구’ 스포츠가 필요하지만 정작 사회적 거리두기로 스포츠는 암흑 상태이다.

코로나에 걸린 스포츠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최대 희생물일 수 있다. 프로스포츠가 정상적으로 열리고, 많은 관중과 스포츠팬이 경기를 보며 환호하며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스포츠 부재의 시간 속에서 절실히 느낀다. 평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일상에서 사라질 때, 존재감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지는 법이다. 그동안 스포츠가 일상적 삶에 끼친 영향을 별 생각 없이 무심코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는 스포츠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교훈을 남겼다. 일상적 삶을 회복한 뒤 스포츠를 더욱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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