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 2012년 여름, 선배가 70대 중반의 나이로 오랫동안 숙환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35년 전 20대 후반의 올챙이 기자로 첫 출근을 시작해 같은 편집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많은 것을 배웠던 선배였다. 처음에는 기사 훈련을 위해 미국 ‘성조지’, ‘UDA 투데이’ 등에 실린 미국 스타선수들의 화제 기사를 번역하도록 했다. 여러 외신 기사를 익히면서 기사에 대한 눈이 트이기 시작했다. 스포츠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취재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 지를 선배는 자신이 직접 쓴 기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취재력과 기획력, 문장력 등이 잘 갖춰진 선배의 기사는 국내 스포츠 언론인 가운데 단연 돋보였다.

필자가 20여 년간 올림픽, 월드컵, 세계선수권대회 등 굵직굵직한 대형 스포츠이벤트 취재를 하며 스포츠 기자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선배로부터 많은 배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일선기자, 데스크, 편집국장을 거치며 단 한번도 스포츠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이후 대학에서 스포츠 저널리즘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고 후학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스포츠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선배였지만 정작 삶을 마감하는 순간에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선배가 돌아가신 뒤 두 달여 후 뒤늦게 선배의 부고를 지인으로부터 전해 듣고 ‘선배 체육기자의 잊혀진 세계’라는 제목으로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블로그에 글을 썼다. 선배로부터 받은 자양분을 밑거름 삼아 성장한 후배가 선배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소개했던 것이다. 이 선배는 오도광씨다. 경기고, 서울대 사회학과를 거친 선배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 한국일보에 입사해 ‘신동’ 소리를 들었던 유능한 스포츠기자였다. 60년대 경기 결과 위주로 쓰던 기사 스타일을 미국 기사처럼 개인적인 스토리와 멘트를 담는 새로운 기사를 개척한 한국스포츠기자의 원로였다.

지난 주 스포츠언론인이 된 아들뻘인 20대 후반의 제자 3명과 모처럼 한 자리를 가졌다. 대학 졸업 후 한 명은 1년 전 모방송국 스포츠 기자로 취업했고, 또 한 명은 몇 년째 스포츠 인터넷 전문매체를 직접 차려,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나머지 한 명은 이달 초 스포츠 인터넷신문 기자가 돼 한창 수습 중이다. 이들 세 명은 필자가 모 대학에서 스포츠 저널리즘 강의를 할 때, 직접 가르쳤던 학생들이었다. 스포츠 기자의 꿈을 품고 있었던 이들은 이 강의를 듣고 기자가 되겠다는 계획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35년여 전 선배로부터 배웠던 필자 모습이 오버랩됐다. 시대적 상황과 환경은 다르지만 기자가 갖춰야할 기본적인 본질은 아마도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지만 젊음의 용기를 갖고 미숙하나마 세상에 도전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들에게서 오래전 필자가 가졌던 일단을 엿볼 수 있었다.

모두 꿈과 희망에 넘쳐 있었다. 어릴 적부터 스포츠를 좋아하던 이들인만큼 스포츠 저널리즘의 세계를 활짝 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학교에서 서로의 장래 계획을 이야기하던 이들이 마침내 언론계에 입문,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디딘 만큼 앞으로 뜻대로 의지를 잘 구현했으면 싶다. 새로 출발하는 멘티 후배들과 따뜻한 저녁자리를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35년 전 처음으로 잔뜩 긴장하며 편집국으로 들어설 때 필자를 본 선배의 마음도 이랬을까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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