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전환의 시대, 제3지대정치 길을 잃다
[정치평론] 전환의 시대, 제3지대정치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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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정치적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은 길고 험난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나름 소중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실도 인식했다. 선거운동원 몇 명과 빠듯한 선거자금만으로 자유연합당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수만명 유권자들에게 소개했다. 버몬트 주민들 가운데 일부는 양당체제라는 색안경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정치를 보게 되었다(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 샌더스(Bernie Sanders) 상원의원이 1972년 1월 버몬트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 나섰을 때의 일을 적은 글이다. 당시 정계에 갓 입문한 샌더스는 불과 2% 득표율로 낙선했지만 양당체제의 틈바구니에서 펼친 선거운동에 자부심을 느꼈고 또 좌절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돈, 조직, 인물 등 제3정당이 감내해야 할 한계가 너무도 무거웠으며 바로 그런 이유로 미국정치에서 ‘제3정당’이 끊임없이 소멸해 가는 현실 앞에서 결국 자신도 정계를 떠났다고 했다.

당시 31세 청년이던 샌더스는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노인이 됐다. 그런 샌더스가 최근 미국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최종적으로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샌더스의 선풍적 인기는 미국정치와 더 나아가 오늘날의 국제사회를 이해하는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 샌더스는 나이가 많을뿐더러 미국에서는 ‘사회주의자’로 불리고 있다. 그런 그가 트럼프를 반대하는 민주당 지지층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욱이 민주당의 지지층 저변에서 특히 청년층에서의 뜨거운 지지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미국정치는 ‘전환의 시대(Turning Point)’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다. 세계최강 미국의 영광과 부를 안겨주었던 ‘구시대’가 점차 쇠퇴하고 있는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광은 ‘기득권세력’의 영광이었지 결코 보통 시민들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0.1%의 수퍼리치들이 총자산 20%를 장악하고 있는 반면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질 못하고 죽어가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이대로는 절망이라는 생각이 점점 미국사회를 옥죄고 있다는 뜻이다. 4년 전 트럼프 시대의 개막은 분노에 찬 보통 시민들의 공세였다. 기득권층, 주류세력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컸다. 그러나 트럼프는 냉소와 고립, 궤변과 억지, 몰상식과 저급함으로 ‘미국의 위기’를 그대로 노출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이젠 다른 차원의 비주류 반기득권, 게다가 품격에 도덕성까지 갖춘 인물을 모색할 필요성이 민주당에서부터 요구된 것이다. 그것이 샌더스 호출로 구체화 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미국정치는 구체제 문법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모습들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다. 미국사회의 전환기적 징표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미국만이 아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미국보다 먼저 더 역동적으로 기득권 양당체제를 전복시킨 사례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스페인을 비롯해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남유럽은 물론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중유럽 심지어 슬로바키아와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까지 기득권 양당체제에 대항하는 제3지대 정당들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념과 기득권에 찌든 구체제 정당체제로는 새로운 비전을 창출할 수 없다는 국민적 분노의 성과라 하겠다. 중요한 것은 한국도 결코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헌정사 이후 양당체제는 서로 싸우고 비틀면서 이제는 ‘한 패’가 돼버렸다. ‘적대적 공생관계’가 딱 맞는 말이다.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지만 정치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어떨 때는 거꾸로 가기도 한다. 민생의 바다는 고통과 눈물로 가득 차 있지만 정치인들은 때만 되면 싸운다. 사실 그것이 그들의 기득권을 공유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정상배’의 언행에 다름 아니다. 그 와중에도 다수의 정치인들은 엄청난 재산을 늘리기도 했다. 이런 정치가 지금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으니, 우리의 비극 중에서도 엄청난 비극이다.

한국정치에서도 ‘제3지대정치’가 실험적 단계에 접어든지 4년이 됐다. 거대 양당의 독점적 기득권세력을 전복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로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었다. 이념과 지역을 뛰어넘어 국민 중심의 실용노선을 제시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정치변동과 어깨를 함께 할 수 있는 ‘시대변화’를 약속했다. 전환의 시대에 국민의당은 이처럼 작지만 대안적 비전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다당체제’란 말이 익숙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안철수 전 대표는 그 상징적 인물이었다. 그러나 50여년 전 샌더스의 고민과 좌절도 그랬을까. 엄청난 조직과 돈을 거머쥔 거대 양당의 무한 정쟁과 대결구조 속에서 제3지대 정당은 존재감조차 미미했다. 언론도, 지식인도, 여론도 두 쪽으로 갈라졌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딱 둘로 나뉜 듯 제3지대 정당은 점점 고사돼 갔다. 급기야 21대 총선이 다가오자 그들은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안철수도 떠났다. 이제 남은 이들이 다시 ‘민생당’이라는 이름으로 제3지대정치의 깃발을 다시 들긴 했지만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칫 21대 총선을 거치면서 소멸할 것 같은 생각마저 지울 수 없다. 단순히 민생당을 위한 고민이 아니다. 미국보다 더 아프고 유럽보다 더 절박한 양당 기득권체제의 전복, 그 작은 희망의 불씨가 꺼져가고 있는 현실이 아프고 슬플 따름이다. 세계적인 ‘전환의 시대’와 함께하고 있는 대한민국, 그러나 우리는 다시 냉전체제에 버금가는 기득권 양당체제로 복귀하고 있다. 누구를 탓할 수도 그리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한국정치의 한계, 무책임한 정치꾼들의 탐욕, 그 속에서 피울음을 참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얼굴이 영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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