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설날 쪽방촌에 드리운 쓸쓸함… “사무치게 그리운 가족”
[르포] 설날 쪽방촌에 드리운 쓸쓸함… “사무치게 그리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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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최빛나 기자]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돈의동에 위치한 쪽방촌 거리에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아 적막함이 흐르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0
[천지일보=최빛나 기자]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돈의동에 위치한 쪽방촌 거리에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아 적막함이 흐르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0

발걸음 끊겨 푸념하는 어르신

“서로 연락 안한지 오래됐다”

“자식 못본지 10년도 더 돼”

[천지일보=이수정·최빛나 기자]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형제들 연락이 다 끊겼어. 혹시나 나중에 형제들이 아버지 산소에 오면 나한테 꼭 연락하라고 아버지 비석 뒤에 내 이름이랑 전화번호 적힌 팻말을 붙여놓으려고 해. 팻말 보고 언젠가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해서….”

민족 대명절인 설이 얼마 남지 않은 20일 평범한 가정이라면 가족들끼리 모여 귀향길에 오르기에 여념 없지만, 서울 종로구 돈의동에 위치한 쪽방촌은 쓸쓸함만 맴돌았다.

이날 기자가 찾아간 쪽방촌에는 홀로 설 명절을 보내는 어르신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외부인의 방문에 반가워하는 노인도 있었지만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며 달갑지 않아 하는 노인들도 있었다.

가족들의 발걸음이 끊겨 푸념하는 노인을 비롯해 혼자 설 명절 분위기를 내기 위해 명절 음식을 하는 80대 할머니도 볼 수 있었다. 설 연휴를 앞두고 독거노인을 위해 봉사차 교회에서 방문한 몇 사람을 빼고는 쪽방촌에 방문한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쪽방촌에 거주한 지 7년이 넘은 배기수(67)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못 본 가족들을 향한 그리움이 크다고 했다. 배 할아버지의 집 벽면에는 온통 가족사진으로 가득했다. 그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해외로 흩어진 형제들이 정말 그립다”고 애타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은 지금 이산가족이나 다름없다”며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형제들이 생이별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배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목회를 하는 여동생과 하노이에서 여행사 부장을 하는 막내동생이 있다고 했다. 그는 여동생의 사진을 보여주며 “연락도 안 된다”며 “어디서 뭘 하는지, 소식이라도 알고 싶다”고 말했다.

배 할아버지는 중동, 일본 등 여러 국가를 전전하다가 사기를 당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자 가족들에게 다가가기가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나라에서 지원을 받긴 하지만 그래도 상황이 어렵다”며 “자식들과 연락이 끊긴 지도 꽤 됐다. 내가 이 꼴로 사는데 자식 볼 명목이 없다. 다 내 죄가 커서 그렇다”고 말끝을 흐렸다.

배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가족들과 만나지 못해 힘들어함에도 교회에서 하는 여러 봉사활동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고 했다. 그는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나중에 우리 가족들에게 좋은 복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돈 모아서 나중에 가족들 보러 해외로 나가고 싶다. 그곳이 어디든”이라고 말하며, 그동안 모아둔 돈이 든 통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천지일보=최빛나 기자] 20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에 위치한 쪽방촌에서 한 노인이 홀로 폐지를 줍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0
[천지일보=최빛나 기자] 20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에 위치한 쪽방촌에서 한 노인이 홀로 폐지를 줍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0

골목 구석에서 쓸쓸히 폐지를 줍고 계시던 한 할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김정순(80) 할머니는 구부정한 허리로 힘겹게 종이박스를 줍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점심은 드셨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끼니 거르고 혼자 폐지를 줍고 있다. 일상이라 아무렇지도 않다”고 답하며 “있다가 집에서 대충 때울 생각”이라고 무덤덤하게 얘기했다.

김 할머니는 4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가 절단됐다가 봉합 수술을 받았다. 그는 거동하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고 했다. 3년간 재활치료를 받아 지금은 두 다리를 움직일 수 있지만 앉았다가 일어서는 것조차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폐지 모으기를 계속하는 이유에 관해 묻자, 김 할머니는 “얼마 되지 않는 수입이지만 작게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한다”고 힘없이 답했다.

김 할머니에게 설 명절은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날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통사고 때문에 집안이 모두 풍비박산 났다”며 “자식들이 엄마를 보러오려고 하지 않는다. 가족들 안 본 지 꽤 됐다.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고 힘없이 말했다.

김 할머니는 “자식들과 며느리도 집에 찾아오질 않는다. 핸드폰도 없어 연락조차 안 온다”며 “아무 연락도 없어서 속상하고 외롭기도 하다. 근데 뭘 어떻게 하겠나”라고 푸념했다.

김 할머니는 가족이 찾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 무심하게 얘기하면서도 가족들의 근황에 관해 궁금해했다.

그는 “우리 손자가 올해 군대 갈 나이가 됐는데 입대를 했는지 모르겠다”며 “자식들이 속을 썩이지만 잘 살고 있는지 걱정된다”고 말하다가 이내 눈물을 훔쳤다.

[천지일보=최빛나 기자] 20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에 위치한 쪽방촌에서 한 노인이 좁은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0
[천지일보=최빛나 기자] 20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에 위치한 쪽방촌에서 한 노인이 좁은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0

가족들과 함께 모여 즐겁게 지내는 명절이 달갑지 않다고 하는 노인도 있었다. 공이식(71) 할아버지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혼자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 가족들 오는 것도 귀찮다”고 차가운 말투로 얘기했다.

공 할아버지는 부모님과 있었던 심한 트러블로 인해 도망치듯이 쪽방촌에 왔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는 명절이 그냥 성가시게 하는 날일 뿐”이라며 “가족도 없는 나에게 이런 명절은 마음에 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라고 하소연했다.

오랫동안 외국에 떠나 있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설 명절을 맞이하는 김필목(가명, 91) 할아버지는 “하나뿐인 자식인데 명절에 못 본 지 십년도 더 됐다”며 “가끔 연락은 하지만 그래도 얼굴을 보고 싶다”고 그리워했다.

그러면서 “이곳(쪽방촌)에 오는 사람들은 전부 비참한 사연들을 갖고 있다”며 “홀로 지내는 사람이 대다수이기에 이곳에서 설 명절은 외로움과 쓸쓸함만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한편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지난해 12월 기준 802만 6915명이다. 국민 6~7명 중 1명은 노인인 셈이다. 10년 만에 약 300만명 늘어난 노인 인구는 2025년 무렵 100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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