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세한도 - 구이람(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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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

구이람(1950 ~  )

눈 퍼얼 펄 하염없이
마음을 덮고
나뭇가지를 덮는다

오솔길마저 흰 산으로 막혀 버리고
그 누가 이 어둔 길을 뚫고 날 찾아오랴

저 높은 하늘과 작은 새 한 마리
깃털 흔들어 첩첩 백설을 녹이누나

[시평]

세한도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제주도 유배 시에 제자인 이상적(李尙迪)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이상적은 역관(譯官)이다. 사제 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두 번씩이나 북경에서 귀중한 책을 구해다 스승에게 준 사람이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제일 늦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드는 것을 안다”는 그러한 이치에 빗대어, 권세와 이익을 따르는 무리들은 그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그 사귐이 이내 시들해진다는 세태를 빗댄 말, 세한도(歲寒圖)는 바로 이러한 의미를 지닌다.

한 겨울이다. 펄 펄 내리는 눈은 나무를 덮고, 또 만물을 덮고, 우리들 마음까지 덮어준다. 눈이 쌓이고 쌓여 만물들 모두 덮어버린 그 겨울의 무서운 추위를 뚫고 어둑어둑 날 저문 저녁 무렵 가난한 우리의 삶을 찾아올 사람 어디 있겠는가. 마치 눈에 쌓여서 모든 것이 단절된 듯한, 그 고립무원(孤立無援)의 그 사람을 위해 찾아올 사람 그 어디에 있겠는가. 세상은 자신의 이익과 권세만을 쫓아다니느냐고, 눈에 쌓여 움쩍도 못하는 그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사람 생각할 겨를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러나 저 높디높은 하늘과 작은 새 한 마리, 깃털 흔들어 첩첩 백설을 녹이고 있구나. 그 작디작은 깃털을 흔들어 춥고 추운 백설의 그 추위를 녹이고 있구나. 그렇다 세상은 모두 권세와 이익으로 눈멀고 귀가 멀었어도, 그래도 어딘가에는 비록 작은 힘이나마, 그 권세와 이익과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 또한 있나니. 그래서 세상의 세한도(歲寒圖), 또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마음들에 의하여 그려지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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