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드는 날

도종환(1953 ~  )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시평]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버려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란 자기 집착과 자기애(自己愛) 등이 잘 직조되듯이 구축이 된 존재이기 때문에, 진정 버려할 것과 버려야 할 때를 스스로 잘 모르고,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자기 스스로 합리화를 해가기를 좋아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때때로 나락으로 추락하는 어려움을 겪는 존재이다.

그러나 자연은 그렇지를 않다. 버려야 할 것과 버려야 할 때를 참으로 잘 알고, 그때가 되면, 그것을 아무런 미련 없이 버려버리고 마는 것이 자연이다. 어디 나뭇잎이 떨어지고 싶어 떨어지는 것이겠는가, 나뭇잎이 물이 들고 싶어서 물이 드는 것이겠는가. 그때가 되면, 저절로 물이 들고, 또 저절로 떨어져 앙상한 가지로만 서 있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 바로 자연이다.

그래서 이 가을 나무는 가장 절정에 설 수가 있다. 그래서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그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타고 있는 것이다. 이 가을 가장 아름답게 불타고 있는 모든 나무들은, 모든 자연은 바로 이러함의 한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 가을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그렇게 물이 드는 그런 계절, 사람들도 스스로 버릴 것을, 버려야 할 때를 알아 가장 빛나는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의미 있는 삶이 되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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