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무덤

유장균(1942 ~ 1998)

세상 너머 저 바닷가
검붉은 하늘의 휘장 아래
조개껍질들이 달그락거리고 있다.
언제부터 조개들은
세상을 피해 문을 잠그고
오색의 꿈을 꾸며 살았을까, 어떻게 살면
저렇게 백골만 곱게 남기고
백골 속에 반짝이는 사리 몇 개만 남기고
갈 수 있을까. 어떻게 살면
어느 날 일제히 미련 없이
속살만 빠져나와 사라질 수 있을까
조개껍질 속으로 색깔 속으로
자취 없이 숨어버릴 수 있을까, 일제히.

[시평]

한 생애를 살아가며, 수많은 일들을 겪는다. 이렇듯 살아오다가 어느덧 나이가 들고, 살아온 날들보다는 살아갈 날이 훨씬 적어지게 되면, 나름 지난날들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날들, 또는 이제 다가올 생의 그 마지막 순간에 관해 나름대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이러함이 우리들 삶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내가 살아온 지난날들은 과연 잘 살아온 날들인가. 과연 잘 살았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그런 삶을 나는 살았을까. 스스로에게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름대로 잘 살아서 내 삶의 그 마지막이 마치 바닷가에 쌓여 있는 하얀 조개무덤 마냥, 아니 하얀 결정으로 빛나는 사리의 모양으로 쌓여 있는 그 조개무덤 마냥 정결하게, 그렇게 내 삶의 지난날들이 쌓여질까. 생각해 본다. 내 안에 다스릴 수 없는 욕망, 그 욕망으로 이글거리던 속살 모두 버려버리고, 하얀 백골로, 아니 맑고 하얀 사리만을 남기고 이 세상의 오욕을 훌훌 벗어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실은 우리 모두 이러한 삶과 그 삶의 마지막을 희구한다. 그러나 어디 우리의 희구와 같이 우리들 살아질 수 있을까. 오장과 살과 이들을 지배하는 욕망, 버릴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들 다만 희구만을 지닐 뿐,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바람만 자리하고 있을 뿐, 어쩔 수 없는 욕망의 삶을 오늘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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