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처럼

서정춘(1941 ~ )

전설 같은 노래라지
딸기 먹고 딸을 낳고
고추 먹고 아들 낳고
희망 일기 쓰면서 흥흥거렸지
시간 농사지으며 흥흥거렸지
바야흐로, 끝물 전에 도둑맞듯
아들 딸 남의 손에 얹어 주었지
돌아와, 아내와 나
비스듬히 작대기로 남게 되었지
11월처럼

[시평]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그래서 호호백발의 노년에 들어가게 되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그 삶이 어쩌면 한편의 동화 같기도 하고, 또 한 구절의 전설 같기도 하고 때로는 한마당 꿈같기도 하리라. 마치 기나긴 세월을 동화 속에서 소꿉장난하듯이 살아온 듯도 하고, 때로는 알 수 없는 머나먼 전설의 시간을 지나온 듯도 한, 그래서 마치 꿈결 같은 시간을 지내온 듯한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마치 딸자식은 두 부부가 딸기 먹고 낳은 것 같고, 아들자식은 마치 고추 먹고 낳은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아들딸 낳으며 아들딸 키우며 살아왔던, 그래서 겪었던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모두모두 잊어버린, 그래서 호호 늙어만 가는 두 늙은 부부에게는 말이다.

그 아들딸 모두 끝물 전에 도둑맞듯 남의 손에 얹어주고, 그래서 두 늙은이만 남아 속절없이 그 늙어 감을 더욱 실감하며 살아가는 모습. 그래 마치 아무러한 장식도 없이 다만 비스듬히 서 있는 작대기 같은 삶. 한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그런 어느 11월, 마치 그 11월이라는 글자의 두 개의 작대기 마냥 비스듬히 서 있는 두 늙은이. 그렇다 이제 한 장만 더 넘기면, 한 해도 저물고 마는, 인생 11월달이로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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