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무생(無生) - 이관묵(1947 ~ )
[마음이 머무는 시] 무생(無生) - 이관묵(19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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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생(無生)

이관묵(1947 ~  )

눈 오시는 길
나무가 내 걸음 앞에 삭정이 하나를

툭!

떨어뜨린다

그 소리 주어다 처마 끝에 걸어두었더니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며 바싹 말랐다

저 앙상한 단어에게

한층 더 높아진 겨울하늘을 걸어주고 싶다.

[시평]

겨울은 모든 것들이 안식을 취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나무도, 풀도, 또 나무삭정이도 죽은 듯이 말라가며 스스로를 견뎌낸다. 이렇듯 모든 것들이 마르고 또 침묵을 지키는 계절, 유독 이 겨울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눈이다. 펄펄 온 세상을 뒤덮는 눈이 내리면, 삭막했던 겨울이 이내 풍성해진다. 눈이 없는 겨울, 참으로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눈 오시는 길, 바싹 마른 나무가 삭정이 하나를 툭 떨어뜨린다. 마른 삭정이 하나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 그 소리가 바로 겨울 아니겠는가. 겨울의 소리를 주어 처마 끝에 걸어두고는 겨울 내내 겨울을 바라다본다. 겨울은 추위 속 얼었다 녹았다 하며 겨울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짝 말라가고 있다.

한 시인의 겨울을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얼었다 녹았다 하며 바싹 마른 겨울을 견디며, 그 겨울이 지닌 겨울이라는 단어. 그 단어가 지닌 겨울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시인의 삶이 아니겠는가. 얼었다 녹았다 하며 더욱 말라는 그 겨울에 한층 더 높아진 겨울하늘을 걸어주고 싶듯이, 시인은 얼었다 녹았다 하며 더욱 깊어지는 겨울의 깊이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겨울의 한 층 더 높아진 그 무생(無生)의 의미 속으로.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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