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구석본(1949~)

사랑한다는 것은
영혼 깊이 숨어 태초의 그 물결이
급기야 파도가 되어
너와 나,
이쪽과 저쪽을,
가로막는 방파제 앞에서
철썩거리며
한없이 철썩거리며
몸을 허옇게 부수는 일이다.

[시평]

‘사랑’이라는 말은 이제는 너무 평범하고 또 일반적인 말이 되어버렸다. 사랑한다. 또는 서로가 사랑해야 한다느니,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쉽게 쓰이는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어느 경우에도 쉽게 사용되는, 그래서 마음에 그렇게 부담이 되거나 크게 다가오지 않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실은 이 ‘사랑’이라는 말은 그리 만만한 말씀이 아니다. 손쉽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말도 또한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영혼 깊이 숨어 있는, 태초의 그 고요한 물결이 급기야 파도로 변해버릴 수 있는, 그러한 강력한 마음의 동요를 지닌 말씀이다. 그리하여 급기야는 거친 파도가 되어, 너와 나, 이쪽과 저쪽을 가로막는 방파제와 같은 장애물 앞에서, 끝없이 철썩거리며, 허옇게 자신의 몸뚱이를 부수어버리는, 그와 같이 강력한 힘을 지닌 단어이다.

드넓은 바다 앞에 서면, 끊임없이 파도가 출렁이는 드넓은 바다 앞에 서면,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는 ‘사랑’이라는 그 대단한 에너지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끊임없이 출렁이는 그 강력한 파도와 같이 ‘사랑’은 바로 끊임없는, 그리고 강력한 에너지를 지닌 말이 아닐 수 없다. 사랑해야 할 진정한 대상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끓어오르는 힘, 이가 바로 사랑의 원천이 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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