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정석

김성춘(1942 ~  )

지금 있다 내 가방 속에는

생수 한 병
노바스크 한 알과 새소리 두 알
읽다 만
가을 하늘 몇 페이지
봉인된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에튀드

이것만으로도
나의 하루는 중분하다

손에 희망을 정중히 들고
신(神)의 앞으로!

[시평]

‘희망’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약 ‘희망’이라는 것이 없다면, 그 삶은 어느 의미에서 삭막하기 그지없는 삶이리라. 희망은 우리 삶의 중요한 활력소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이 결코 어마어마하거나, 우리의 외양을 화려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결코 아니다. 비록 작고 하찮아 보이는 것일지라도, 우리의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는 것이 진정 우리의 희망이 된다.

시인은 삶이라는 가방 안에 시인의 일상을 보다 활기롭게 하는 희망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비록 작고 하찮은 것이지만. 그래서 생수 한 병, 노바스크라는 혈압약 몇 알, 그리고는 읽다만 가을 하늘 몇 페이지, 봉인된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에튀드 등, 우리를 보다 활기롭게 만드는 일상의 일들을 삶이라는 가방에 담고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시인의 가장 이상적인 희망이고, 또 희망의 정석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러한 소박한 희망을 정중히 손에 들고는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 신의 섭리에 따라, 신의 앞으로, 신의 앞인 죽음이라는 그 절체절명의 명제를 향해 우리 모두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죽음이라는 신의 앞으로 걸어가는 그 삶, 실은 그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우리 모두 스스로 마음 깊이 되새기며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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