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한국 원로 스타들의 명암
[이재준 문화칼럼] 한국 원로 스타들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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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지난 70년대를 주름잡던 한국 영화계 스타들이 이제 하나 둘 세상을 떠나거나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 청춘스타 신성일씨가 지난해 타계했고,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잉꼬 소식을 전하던 윤정희씨가 알츠하이머로 투병중이라는 소식이다. 

윤씨는 70년대 문희, 남정임과 더불어 트로이카라는 별칭을 받은 인기 스타였다. 윤씨는 프랑스 파리에서 살고 있으며 가끔 귀국해 영화에도 출연하고 부군과의 일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들 부부의 예술적 삶은 로망이었으며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한국 영화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윤씨는 몇 해 전에는 알츠하이머를 사는 70대 여류시인을 그린 영화에 출연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가 10년 전부터 실제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으며 최근에는 딸마저 알아보지 못한다는 남편의 충격적인 말이 전해진다. 아내를 치료하며 고통적인 삶을 살아온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아내에 대한 사랑과 헌신적인 봉사는 감동적이다. 

얼마 전 한 중앙지가 인기배우였던 신영균씨를 인터뷰한 기사가 눈길을 끈다. 신씨는 서울 치대를 졸업한 치과의사로 윤정희와 더불어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남자 배우였다. 당시 신영균씨가 나오는 영화는 거의 흥행에 성공했다. 

이 시기 홍성기 감독, 김지미 주연의 춘향전과 신씨 주연의 성춘향이 흥행대결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씨의 성춘향은 신상옥감독이 연출하고 최은희씨가 춘향역을 맡아 압도적인 흥행 실적을 거두기도 했다. 

신씨는 큰 돈을 모았으나 영화계의 소문난 짠돌이란 별명을 받고 살아왔다. 후배 영화인들이 인색함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살아온 동료영화인들의 보살핌에 나서지 않는다는 불평들이었다. 

신씨는 묵묵히 자신의 일과 사업에만 치중했다. 신씨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자신의 가장 값나가는 부동산을 한국영화계의 발전을 위한 디딤돌을 삼고자 공익재단에 기증한 것이다. 

지난 2010년 명보극장(명보아트홀)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등 500억원 규모의 사유재산을 한국 영화 발전에 써달라며 내 놓았다. 또 모교인 서울대에도 시가 100억원 상당의 대지를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신영균영화예술재단은 2011년에 출범한다. 재단은 건물 임대료와 기부금 등 각종 수익금으로 9년째 단편영화 제작 지원, 영화인 자녀 장학금 지급 등 사업을 벌이고 있다. 재단이 만든 ‘아름다운 예술인상’은 영화인들에게는 희망의 광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신씨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무덤으로 가져갈 물건은 오직 낡은 성경책 한 권 뿐’이라고 말했다. 빛이 났던 호남배우 신씨의 나이도 이제 91세다. 신씨의 성공담은 1백년 한국영화의 역사와 함께 아름다운 미담으로 회자될 것이다.  

한국영화는 1천만 관객시대를 맞고 있다. 최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할리웃에 진출, 외신은 오스카상 3개 부문 후보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해야만 여러 나라에서도 흥행이 보장된다는 공식도 생겨났다. 

그러나 영화계 이면에는 단칸방에서 최저의 삶을 살아가는 영화인들이 많다. 스탭들은 매월 면세점 이하의 돈을 받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배우나 작가 가운데는 끝내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외화내빈이라고나 할까. 원로배우 가운데는 윤정희씨 처럼 알츠하이머로 힘든 삶을 지탱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오늘날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한국영화를 위해 애쓴 원로 배우들이 안정된 삶이 모색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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