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사실 지금 ‘트윗’이나 날리면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거짓말로 들통 날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아무리 트윗 매니아라 하더라도 그것도 때가 있는 법이다. 심지어 그 트윗의 주요 단어들을 보면 특유의 격한 단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상대방을 향해 사기(fraud), 반역죄로 체포(Arrest for Treason), 쿠데타(COUP) 심지어 과거 남북전쟁과 같은 내전(Civil war)으로 갈 수도 있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다시 ‘탄핵’ 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에는 차기 대선에서 자신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른 바이든(Joe Biden) 전 부통령을 상처내기 위해 지난 7월 25일 우크라이나의 신임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압박을 했다는 것이다. 2016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바이든 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한 에너지 기업 간부로 있던 자신의 아들이 비리의혹에 휩싸이자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을 해임토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이것을 이번에 젤렌스키 행정부가 수사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상대국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며, 상대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내정간섭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무기구매 등의 미국의 지원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에 사실상 ‘압박’을 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내용은 국가정보국(DNI)에 근무하는 현직 요원이 익명으로 그 부적절성을 내부에 고발함으로써 불거진 것이다. 이에 DNI도 내부 감사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매과이어(Joseph Maguire) 국장에게 보고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그러자 감찰 책임자인 앳킨슨(Michael Atkinson)이 하원 정보위원회에 내부고발 사실을 알리면서 비로소 언론에 보도될 수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관련 사실을 부인하며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히려 ‘멋진 대화’였다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전 부통령이 매우 부정직하다며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역공까지 폈다. 하지만 트럼프의 녹취록이 공개되고 자신의 거짓말이 드러나자 미국 내 분위기는 금세 싸늘해졌다. 1974년 당시 닉슨 대통령의 거짓말 사례까지 언급되면서 급기야 ‘탄핵 정국’으로 진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윗을 통해 ‘아니면 말고’ 식의 거친 말을 쏟아내는 트럼프의 언행은 점점 명분은 물론 실리마저 잃어가고 있다. 심지어 DNI 내부고발자를 압박하는 일들까지 벌어지고 있다. 미국 정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처음 보도한 ‘워싱턴포스트’는 노골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 지난 1일자 신문에서 재선을 위해 명백한 사실마저 부인한 채 모욕적이고 뻔뻔한 거짓말까지 쏟아내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그리고 트럼프의 주장이 이미 ‘거짓’으로 밝혀졌는데도 똑같은 거짓말을 가는 곳곳마다 퍼트리고 있다며 미국의 민주주의 문제까지 언급할 정도였다. 이에 야당인 민주당이 곧바로 탄핵 정국으로 들어가자 트럼프는 더 강하게 반발하면서 탄핵이 아니라 ‘쿠데타’를 하려는 것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사실 트럼프는 지난 4월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한 뮬러(Robert Mueller) 특검을 향해서도 제3세계 수준의 쿠데타라며 거세게 비난한 적이 있다. 그 버릇 남 주지 않았던 셈이다.

현재 미국 하원의 6개 상임위가 트럼프에 대한 탄핵소추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그리고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 때 옆에 있었다는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조사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폼페이오는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미국 의회의 조사까지 막아낼 수단은 없어 보인다. 물론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인 만큼 실제로 탄핵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차기대선을 불과 1년쯤 남겨놓은 시점에서 여론이 어떻게 바뀌느냐 하는 것이다. 자칫 트럼프 행정부가 ‘탄핵 블랙홀’로 빠져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재선 선거운동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시점에서 미국이 다시 ‘북한 카드’를 뽑아들었다.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1일 성명을 내고 “미국과 북한 당국자들이 앞으로 일주일 내에 만날 계획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앞서 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담화를 통해 “조미 쌍방은 오는 10월 4일 예비접촉에 이어 10월 5일 실무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하였다”라고 밝힌 데 대한 확인인 셈이다. 코너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관계를 지렛대로 삼아 위기 정국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읽히는 대목이다.

특히 이번 북미회담에 관심이 가는 것은 북핵문제를 풀 수 있는 이른바 ‘새로운 셈법’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 때문이다. 지난 2월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새로운 셈법’을 공식적으로 요구해 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도 강경 네오콘으로 분류되는 존 볼튼 안보보좌관을 전격 해임시킨 뒤 북한의 요구에 어느 정도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게다가 미국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특히 지금 트럼프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북미관계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다면 트럼프의 위기탈출에 결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냉전체제의 마지막 철조망을 걷어낸다는 역사적 의미를 감안한다면 전 세계에 던지는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마침 ‘단계적 해법’과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 얘기도 나오고 있다. 과연 트럼프는 북한 카드로 탄핵 정국을 정면 돌파할 수 있을 것인지 그의 최종적인 선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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