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나름 판단력이 뛰어나 어려운 일을 늘 상의하던 친한 친구가 있다. 어느 순간 이 친구가 모든 대화의 결론을 꼭 정치논리로 이어가며, 현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을 적폐로 싸잡아 공격한다. 분명히 정부가 잘못하는 일도 무조건 옳다고 한다. 진영논리에 빠져 상황판단을 제대로 못 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친구를 통해 새삼 느낀다. 이 칼럼은 정치가 아닌 교육 문제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딸이 지필고사를 한 번도 보지 않고도 외고-고려대-서울대 대학원-부산대 의전원을 진학했다는 뉴스를 접한 2030세대와 이들을 자식으로 둔 부모들의 허탈감이 극에 달했다. 울분과 절망을 토해내며 촛불집회까지 열며 공정하지 못한 기회를 이용한 입시비리라고 비난했다. 부모들마저 “밤늦게 책상에서 공부하고 있는 고3 아들에게 아빠가 조국이 아니라서 미안하다, 무능한 부모라서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하기조차 힘들다, 유급한 학생도 장학금 받는데 장학금 못 타 편의점 알바하며 등록금 보태는 아이에게 할 말이 없다.”라고 성토를 한다. 부산대의 한 교수는 “아내에게 ‘교수인 아빠가 아들에게 논문 제1저자 스펙을 만들어줬다면 아들이 재수하고 있지 않을 텐데 아빠도 아니다’라는 핀잔을 들었다”고 했다.

필자는 그동안 칼럼에서 수시·학종의 축소 또는 폐지, 수능위주 정시확대를 반대하는 세력이 교사·교수 등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기득권층이라는 논지의 글을 수차례 썼다. 그 실체가 드러난 셈이다. 일부는 “조국 후보자 딸이 입시 제도를 잘 이용했을 뿐 비리는 아니다”고 주장한다. 보통 학부모는 꿈도 꾸기 어려운 논문 저자와 12개의 인턴십 스펙은 드라마 스카이 캐슬처럼 코디네이터가 관여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결국 학종은 상류층끼리 정보교환하며 스펙 만들어주고, 실력이 부족해도 명문대 진학 할 우회로를 만든 제도나 다름없다. 사시를 없애고 로스쿨 만들고, 의대 없애고 의전원 만든 것도 서민은 감히 넘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사회적 정의를 외치며, 약자의 편에 선척하며 강연으로 선동하는 분들의 자녀에게 유리한 제도인 셈이다.

조국 후보자는 과거 강연에서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하늘의 구름 쳐다보며 출혈경쟁하지 말고 예쁘고 따뜻한 개천 만드는 데 힘을 쏟자!”라고 했다. “내가 강남 살아보니 모두가 강남 살 필요가 없다.”는 말과 너무 닮았다. 당시에는 서민 학생을 위로하는 말로 들렸지만, 지금 해석하니 서민의 자식들은 위를 쳐다보지 말고 고린내가 진동하는 개천에서 신분에 만족하며 살아야지 어찌 감히 하늘을 쳐다보느냐는 말이었다. 기회는 균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를 외치며 미사여구로 청년을 위로하는 척 하며 자기 자식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용으로 만들어 하늘로 날아오르게 했다.

피땀 흘리며 개천에서 용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서민의 자식들을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을까?’ 생각하면 정유라의 “부모 잘 만난 것도 실력”이란 말이 애교로 들린다. 상류층만이 가질 수 있는 고급정보를 주고받아 명문대에 진학할 방법이 있는 나라면 신분제가 있는 나라와 다를 바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며 서민 청년을 응원한다는 달콤한 강연에 열광하며 눈물 흘리던 서민의 자녀들은 금수저들을 위해 열심히 밑받침하던 분모에 불과했을 뿐이다.

학종이 없던 시절에 필자의 아들은 S대에 진학했다. 사교육 없이 학교 야자와 독서실에서 자기주도 학습으로만 이뤄낸 성과지만 수능위주 정시전형만 있어 가능했다. 졸업 후 대기업과 로스쿨 시험에 합격했다. 회사를 다닐지, 로스쿨에 진학해 공부를 할지 고민하다 로스쿨 학비를 감당할 형편이 안 되는 개천에 사는 부모 탓에 회사를 선택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리며 아쉬워하던 아들의 표정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어 마음이 아프다. 대한민국 부모들이 절대 용서 못하는 한 가지가 교육 문제다. 정유라와 숙명여고 사태에서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대한민국 교육이 공정하다는 믿음이 뿌리째 흔들렸다. 촛불은 대한민국의 정의를 바로잡는 의미이지 특정 정당의 상징이 아니다. 공정사회를 가로막는 상류층만의 리그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제도개혁을 요구하는데 촛불을 들어야 한다. 부모의 사랑은 지름길보다 옳은 길을 가르쳐야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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