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김상곤 교육부 장관 시절 대입제도 공론화 위원회까지 만들어 정시를 45% 이상 확대하자는 안이 1위였지만 정시확대는 30%에 그쳤다. 조국 후보자 자녀 논란이 대입제도 개편의 불씨를 살렸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여부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사안이지만, 재력과 정보력을 가진 부모를 둔 자들이 수시와 학종을 대학 진학에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교육부장관은 “수시와 정시 비율을 곧 바꾸지 않는다. 대신 학생부종합전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최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며 정시 확대는 더 이상 곤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수시와 학종이 사회적 약자나 지방에 있는 학생들이 유리한 전형이 될 줄 알았지만 실상은 기득권층에 유리한 제도였다. 오히려 정시보다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한 전형임이 여실히 증명됐다. 일반인들은 이해조차 힘든 수천가지 전형으로 인해 편법, 탈법이 난무하고 그만큼 뒷문 입학이 가능하다. 일반고는 1학년 때 선발된 상위권 학생에게 학생부를 몰아줘 명문대 진학실적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학종이 변질됐다. 그 과정에서 대다수 하위권 학생들의 진학은 학교의 관심 밖이 되고 일반고 교실 붕괴로 이어지는 게 현실이다.

학종은 순수한 학생 개인의 능력이 아니다. 자소서를 학생 개인이 쓰는 경우도 극소수다. 하다못해 국어 교사도 지인 자녀들의 자소서 첨삭 자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재력이 있는 집은 자소서를 컨설팅 업체에 맡기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학종의 중점요소인 자율·동아리·봉사·진로라는 ‘자동봉진’에 상류층일수록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이 훨씬 많이 개입된다. 고액을 들인 사교육에도 실력 상승이 불가능한 기득권층 자녀들을 대학에 진학 시키는 도구로 전락했다. 학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통 학생들이 느끼는 박탈감을 고려하면 하루빨리 폐지해야 한다.

수능 중심의 정시가 확대되면 전국의 수험생을 한 줄로 세우기 때문에 불합리하다고 한다. 수시나 학종은 부모의 능력이 줄 세우기에 개입할 수 있지만 정시는 오로지 개인의 실력으로 줄 세우기만 가능하다. 공정하고 투명한 방법으로 줄을 세우면 모두가 불만이 없다. 줄 세우기보다 새치기가 나쁘다. 학력고사, 수능 시대에는 시골에서도 EBS방송과 학교수업으로 수능 고득점이 가능했다. 지금은 인터넷 강의가 있으니 더 도시와 시골간의 교육정보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강남 스타 강사의 강의를 스마트폰으로 아무 곳에서나 들을 수 있으니 수능위주 정시가 강남을 비롯한 수도권 학생에 유리하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부족하다.

수능이 오지선다형 시험이라 바람직한 인재를 선발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면, 학력고사와 수능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아 이 사회의 지도층이 된 사람들의 경우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수능이 족집게 문제를 달달 외워서 되는 시험이 아니다. 공부의 모든 기초는 암기다. 수학도 기본 공식을 암기해야 응용력이 나온다. 영어도 알파벳과 단어를 외워야 회화 공부가 가능하다. 국어 읽기도 자음모음을 암기부터 시작한다. 교과서 중심의 수능과 내신점수를 일부 반영한 정시체제가 가장 공정하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으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공교육이 정상화 된다.

고교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서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전형으로 첫 번째 수능, 두 번째 학생부 교과를 꼽았다. ‘자동봉진’을 반영하는 학생부 비교과가 공정하다고 생각한 학생은 10명에 1명꼴에 불과하다. 수시나 학종은 입시지옥을 핑계로 기득권층의 교육 세습을 위해 만든 제도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로스쿨, 의전원 제도도 신분세습에 이용되도록 만든 제도다. 정시가 아무리 불평등해도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하지만 학종의 불평등은 재력, 권력, 정보력을 갖지 못하면 극복이 불가능하다. 해외 거주할 능력이 되는 상류층의 대학입학수단으로 전락한 재외국민특례 입학제도도 분명히 개선해야 한다. 사법시험과 의과대학을 부활시켜야 공정사회로 간다.

교육부는 교육제도의 당사자인 학생, 학부모들이 정시를 확대하고 학종을 폐지하라는 주장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부모 잘 만나 새치기하는 입시제도는 더 이상 공정하지 않다. 나만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친구를 경쟁자로 여겨 반드시 꺾어야 하는 수시·학종 제도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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