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1970년 11월 25일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의회를 해산하고 천황제를 부활하자고 주장한 뒤 할복자살했다. 할복(割腹)은 칼로 제 배를 갈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말한다. 영주들이 성(城)을 중심으로 피비린내 나게 싸우던 전국시대부터 내려오던 무사들의 전통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 배 가운데를 깊이 찔러 L자로 긋는 것이다. 고통을 덜어주고 확실하게 죽도록 도와주기 위해 다른 사람이 뒤에서 칼로 목을 내리쳐 주는데, 이것을 카이샤쿠(介錯)라고 한다.

할복도 의례화 되면서 카이샤쿠 기술도 발달해 목의 피부 한 장만 남겨 베기 등의 기교가 생겨나기도 했다. 칼솜씨가 서툰 사람이 카이샤쿠를 하다 보면 목이 단번에 날아가지 않게 된다. 몇 번이나 칼로 목을 내려치고 그 바람에 자살자의 고통이 오히려 더 커지게 된다.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을 할 때도 그랬다. 카이샤쿠를 행한 모리타 마사카츠가 두 번이나 목 날리기에 실패했고 심지어 칼까지 구부러져 버렸다. 미시마는 고통으로 몸부림을 쳤고 할복 현장인 자위대 총감 사무실은 피범벅이 되고 말았다. 깨끗하게 죽어 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한 짓이 도리어 폐가 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세계인들이 일본에 주목하게 되었고 일본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도 커지게 되었다. 일본 무사도(武士道)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니토베 이나조는 <무사도>에서, 복부에 인간의 영혼과 애정이 깃들어 있다는 고대의 해부학적인 신앙에서 용사의 배를 갈라 무사도를 지키는 자결방법으로 적절히 여겨졌다고 했다. 서양에서는 무사도가 일본의 정신과 사상을 관통하는 힘이라며 칭송했다.

무사도는 충성, 희생, 신의, 염치, 예의, 결백, 검약, 상무, 명예, 애정을 가치로 내세우지만 다 헛껍데기일 뿐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등 동아시아에선 유교를 바탕으로 한 문치(文治)의 시절을 지나왔다. 멀리 있는 베트남도 그랬다. 칼이 지배하는 나라는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유일했다. 메이지 유신으로 중세시대를 호령했던 무사의 시대가 마감하면서 무사들이 쓸모가 없게 되자 엉뚱하게 무사의 도(道)를 운운하며 그럴싸하게 포장을 하게 된 것이다.

칼을 차고 지배계급으로 군림하던 무사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자 그들은 고향을 떠나 음식점을 하는 등 살 길을 찾아야 했다. 그중에서는 조직 폭력배로 변신하는 자들도 있었다. 일본의 조직폭력배 야쿠자들이 칼을 많이 휘둘렀던 것도 그 원조가 무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조폭들이 의리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의리가 없다. 무사도라는 것도 그런 것이다.

중국의 전국시대에 도척(盜跖)이라는 도둑이 있었다. 수천 명의 졸개를 거느리고 세상을 노략질했다. 어느 날 부하가 도적질에도 도(道)가 있느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도적질에도 다섯 가지 도가 있다. 집에 무엇이 있는 지 아는 것이 성(聖), 앞장서 들어가는 것이 용(勇), 가장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義), 도둑질을 해도 안전한 집인지 아는 것이 지(知), 훔친 것을 골고루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인(仁)이니라. 졸개들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둑질에도 도(道)가 있다는데, 나라 사이에도 도(道)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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