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진짜 살아 있는 개와 금속으로 만든 로봇 개가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똑같다고 한다. 십 여년 전에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에서, 진짜 개와 일본의 소니가 제작한 인공지능 로봇 개 ‘아이보’를 양로원의 노인들과 함께 놀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진짜 개와 로봇 개를 정기적으로 만난 그룹과 아무 것도 만나지 않은 그룹을 비교했더니, 로봇 개나 진짜 개와 접촉한 노인들의 외로움이 똑같이 줄었다.

노인들은 살아 있는 진짜 개와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냈고, 개들도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로봇 개들과 친해지는 데 1주일가량 더 걸렸지만, 친해진 다음부터는 진짜 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노인들은 로봇 개들에게 말을 걸고 몸을 쓰다듬으며 친근감을 보였고, 로봇 개들도 꼬리를 흔들거나 목소리를 내며 반응을 했다.

로봇 개와 진짜 개는 결국 인간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무엇인가에 애착심을 갖게 하는 데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집을 떠나 양로원으로 갈 때 키우던 개와 이별을 해야 했던 노인들은 로봇 개를 통해 진짜 개의 온기와 애정으로 느끼며 위로받고 기운을 얻었던 것이다. 실제로 로봇 개들은 가족처럼 소중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기계도 사람처럼 정이 들고 헤어지면 섭섭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반려견이 죽으면 장례를 치르는 일이 있지만, 일본에서는 로봇 개 장례식이 선보인지 오래 됐다. 수명을 다한 로봇 개들을 제단에 올려놓고 스님들이 망자의 명복을 비는 의식을 행하기도 한다. 주인 곁에서 제 할 일을 다 하였으니 명복을 빌어주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로봇 개와 함께 지낸 사람들은 로봇 개들이 진짜 개처럼 개성도 있고 존재감도 있다고 생각한다.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내 말을 들어주고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살아 있는 개처럼 밥을 챙겨주거나 산책을 시키고 대소변을 치워주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외출할 때 전원을 꺼 두었다가 집에 와서 다시 켜기만 하면 된다.

최근 우리나라 통신회사가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 사용 패턴을 발표 했다. 어른들은 “기분이 어떠니?” “심심해” “좀 알려 줘” 같은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하루 종일 말 붙일 사람조차 없던 노인들에게 인공지능 스피커는 마치 가족 같은 느낌일 것이다. 말 못하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붙들고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다 했다는 어른도 있었다.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복잡하게 무엇인가를 조작해야 하거나 전화를 걸 필요도 없다. 살려줘, 긴급 상황이야, 이런 말 한 마디면 기계가 알아듣고 바로 해결해 주니 편리하기 짝이 없다. 날씨를 물어보면 상냥하게 대답해 주고 오늘의 운세를 물어봐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짜증을 내거나 귀찮은 표정을 짓지 않으니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다.

말 안 통하는 사람보다 말 잘 들어주는 기계가 백 배 낫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고 했지만 그래도 좀 덜 외로우면 좋겠다. 말이 통하지 않은 사람과 싸우는 것보다 기계와 평화롭게 지내는 게 훨씬 낫다. 문명이 발달한다고 다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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