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영화처럼, 엑시트가 있기는 할까
[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영화처럼, 엑시트가 있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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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이솝 우화에서 개미는 한여름 땡볕 아래서도 열심히 일하고, 베짱이는 시원한 그늘에서 노래를 부르며 논다. 한겨울이 되자 베짱이는 거지 신세가 돼 개미집으로 찾아간다. 그런데 개미들도 알고 보면 모두가 열심히 일만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모두 부지런히 일하는 가운데서도 놀고 있는 개미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세상 부지런한 개미도 노는 맛을 안다는 게 신기하다.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 모든 동물들이 놀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놀면 아무런 보탬이 안 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자인 도널드 헵(Donald O. Hebb)이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더니, 놀이기구가 있는 곳에 지낸 쥐의 뇌 신경세포가 훨씬 더 발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놀면, 뇌가 발달한다는 것이다. 놀면, 인생이 즐거워지고 뇌까지 좋아지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놀고 싶은 것은, 노는 게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가 없으면 놀라 해도 놀지 않는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게임에 빠져드는 것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프로 게이머들처럼 게임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게임을 그냥 놀이로 한다. 돈도 안 되고 공부에 도움이 되지도 않지만, 재미가 있으니 게임을 하며 노는 것이다.

논다는 말의 다른 의미는 직업이 없다는 것이다. ‘요즘 뭐 하냐’고 물으면 ‘집에서 놀아’ 라고 대답한다. 노는 게 노는 게 아닌데도, 그냥 논다고 한다.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뇌 발달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닌데도 논다고 한다. 왜 할 일이 없는 것을 논다고 말하는 것일까. 논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찾아 행동하는 것 뿐 아니라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공장의 기계가 작동을 하지 않아도 기계가 논다고 하는 걸 보면, 그게 그런 의미인 게 틀림없다.

요즘 극장가의 히트작으로 떠오른 ‘엑시트’도 주인공이 ‘노는’ 사람이다. 철봉에 매달려 갖은 재주를 뽐내며 할머니들로부터 엄지 척을 받고, 철부지 조카로부터 외면 받고, 얹혀사는 누나 집에서도 구박 덩어리로 사는 백수 청년이다.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서 만난 대학 여자 후배와 우연하게 재난의 현장과 맞닥뜨리고 그것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영화는 시종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진짜 손에 땀이 난다. 대학에서 산악회 활동을 하며 실력을 다진 주인공이 빌딩 벽을 클라이밍 하듯 올라가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진짜 손에 땀이 난다. 목숨이 걸린 위급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위기의 순간들을 돌파해 나가는 모습이 화면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만약 영화가 시종 긴장감으로만 밀어붙였다면 관객들도 숨이 막혔을 것이다.

도시를 가득 매운 독가스를 피해 더 높은 곳을 향해 필사적으로 도주하는 남녀 주인공의 모습이 안쓰럽고 대견하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우리 현실 속 청년들의 모습을 닮은 것 같다.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아마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높은 곳을 향해 죽을힘을 다하는 것이, 고작 목숨을 잃지 않는 것임에도 말이다.

클라이밍 경기처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기를, 정말 그런 세상이 되기를, 영화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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